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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Apr 27. 2017

It's very good

그런 집이 아니라 그런 삶이 부러웠을지도.




혼자 결심하고 확고한 의지로 떠난 어학연수지만,

공항안에서, 내가 가야할 곳과 부모님이

들어설 수 있는 곳의 경계가 지어질 때,

창피하게도 눈물이 났다.


어디 멀리 영영 떠나듯이 울었었다.

영영은 아니더라도 어디 멀리는 맞으니깐


좁은 비행기안에서 자고 깨고를 반복하다

찌뿌둥한 몸으로 내려 사람들을 뒤따라 줄을 섰다.

왜 이곳에 왔냐는 질문에,

정말로 이곳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비행기가 너무 멀리 날아와서,

내 짐을 놓고 오지는 않았을까,

아니, 나는 나를 빠트리지 않고

잘 담아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쯤,

수 많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내 이름, 나구나, 내가 여기있구나

하는 자각과 안도감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그 적은 사람들 틈 에서

지연킴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양인은

나뿐임을, 거기있는 누구라도 알 만 했지만

그게 나라며 손을 연신 흔들며 뛰어갔다.


짧게 인사를 하고 내 짐을 들어 태워준 그 사람의

옆좌석에 앉아 벨트를 맸다.


몇 번의 짧은 영어를 주고 받은 뒤

나는 앞창문과 옆창문을 번갈아 가며

내가 살아왔던 곳과 사뭇 다른 풍경들을

지켜보았다.

7월 말, 오후의 따스한 햇살들이 온 땅을

주황빛으로 감싸안던 그날의 풍경들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캐나다의 작은 도시, 와인과 호수가 유명한 휴양지

라는 말이 그 차창 너머 풍경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넓은 푸른 들판과 산들, 그곳에 핀

마치 큰 꽃들처럼 드문드문 자리한 집들을 지나,







다소 평평한 곳 에서,

한번도 살아본 적은 없지만,

어렸을때부터 '집'을 그릴 때면

뾰족한 세모 지붕을 그렸던 집들이,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는

언제쯤 저런 곳에 살아볼까하는 그런 집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쯤

차가 멈춰섰다.

차에서 내려 내 짐을 내려준 후,

이 집이라고 손으로 가리킨 그는 짧은 인사를 건네고 그 차를 타고 천천히 그 곳에서 벗어났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고층의 아파트들이 익숙 한 내게, 겨우 2층 높이 정도인 집이 앞마당과 뒷마당으로 둘러쌓여,

각각 자신들의 공간을 넉넉하게 유지한채,

자리잡고 있었다.



아스팔트 대신 앞마당의 풀들을 밟고,

엘레베이터 대신 작은 계단을 올라

문 앞에 섰다.



문에 적힌 종이에는 잠시 외출중이니

그냥 들어오라는 말이 있었다.



비밀번호로 이루어진 현관문도

엘레베이터도

철제문도

없이

바로 자리한 나무문이

살짝 힘을 주어 당기자 스르륵 열렸다.




잠기지 않은 문 사이로,

그들의 삶의 방식을 엿 볼 수 있었다.



그 종이 밑에 내가 머물 방은 계단 아래에,

위치해 있다고 적혀있었다.



큰 캐리어를 계단을 이용해 밑으로 가지고

내려오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집을 천천히 둘러보며 홈스테이 가정을 기다리기로했다.



가운데에는 거실이

그리고 현관문의 반대편에는

주방과 테라스 그리고 그 뒤로이어지는 뒷마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윗층은 홈스테이 가정이 사용하는 곳

아랫층은 나와 같은 유학생들이 사용하는 곳으로

나뉘었다.



아랫층은 무려 세개의 방과 또하나의 거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머물렀던 집은 주변의 다른 집들에 비해

외관상 화려하지 못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유학생들과 집을 공유하는 다소 불편한일을

감내해 내는 걸테지만-,



그럼에도 그 집은 충분히 넉넉하고 여유롭고

풍족함을 포함하고 있었다.

최대 6명이 생활하는데도 불편함이 없었다.

어느 곳에 난 창이든,

어떤 벽에 의해 가로막히지 않은 햇살이 들어왔다.

층간소음대신 우리들 사이의 시끌벅적함이 있었고,

각자 자신의 공간을 유지하며,

공통의 공간에서 어울릴 수 있었고,

옆 집과의 사생활을 걱정하기엔

충분한 거리로 떨어져 있었으며,

두 대의 차도 공간을 걱정할 필요없이

자신의 집과 가장가까운 곳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밤이 되면 그 세모난 지붕들은,

다른 지붕들과 나눌 필요없이

작은 별모양이 무수히 박힌 까만 이불을 넉넉히

덮곤 했다.






그런 집은

어느때든 창문을 열고 햇빛을 마주보게 했고,

정원에 핀 꽃의 이름에 관심을 가지게 했고,

엘레베이터안에서의 어색한 침묵이 아닌,

각자의 마당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가지게 했고,

비슷비슷한 길이의 집들은 더 넓은 하늘을 볼 수 있게했고, 저녁마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산책을 갖게 했다.








이렇게, 집의 모양은 우리 삶의 모양으로 이어진다.










'어떠니?'


터질듯이 꽉 찬 캐리어를 옮겨 준 홈스테이 가족이

내가 머물게 될 집에 대해 물었다.


'It's very good'


물론 내 짧은 영어 실력도 한 몫 했겠지만,

very good 말고는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는, 의례적인 말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그 집에서 살면서,

난 정말로 그런 집이 좋다고 느꼈다.

그동안 좋아보이는 집은 많았지만,

어떤 집이 좋은지는 불분명 했다.



낮에는 햇살을, 밤에는 어둠너머 별빛을

올려다 볼 수 있는 곳,

각자의 공간과 공통의 공간으로 어우러지는 곳,

사람뿐만 아니라, 작디작은 생명체 이를테면 잔디, 꽃 들과 함께 사는 곳,

자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갈 이웃에게, 다정한 인사 를 나눌 수 있는 곳,


그런 곳이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잠깐 머물렀던 곳의 집들의 모양은

이런 삶의 모양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었지만,

내가 살고 앞으로 살아갈 곳의 집들의 모양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삶의 모양이 바뀌면

내 집도 저절로 그런 삶을 가능케 하는

집이 되지 않을까.




햇빛이 충분하지 않다면, 좀 더 충분한 햇빛을 위해

서둘러 몸을 움직인다면,

너른 마당 대신

창가에 삐죽삐죽 서있는 몇몇개의 식물들이

자리한다면,

마주친 눈동자를 황급히 돌리기보단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면,



아마 그곳 캐나다의 작은 도시 켈로나의

집과는 분명 다른 곳 이지만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문득, 그 집의 풍경이 떠 오를 때면

밤하늘을 올려다 보곤 한다.

두 눈안에 꽉 차도록 올려다보면,

그 곳에서 보는 밤하늘인지

이 곳에서 보는 밤하늘인지

경계가 모호해지기 마련이니깐.

그럼 다시 내 집 풍경은 그 집의 풍경과

닮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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