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연 Oct 25. 2017

그 가을날의 밤

유성우가 떨어진다던 그 밤.


 

작년, 유성우가 쏟아진다던 밤에

딱 한개의 유성우를 본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더 흐른뒤였다.


토요일 밤, 내일은 또 쉴 수 있는 일요일이기에

잠이 들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그 밤에,

잠을 뒤척이다 핸드폰을 켰다.

어두운 방 안, 핸드폰 크기 만큼의 빛을 내는 하얀 화면 위에서

멍하니 눈동자를 움직이다가

그날 밤 처럼 기사 하나를 보았다.

오늘 밤, 유성우가 떨어진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하나 더 껴입은 뒤 옥상으로 올라갔다. 밤하늘을 올려다 보지만,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몇몇 빌딩의 불빛들이 별 빛을 희미하게 했다. 반대쪽으로 의자를 옮긴 뒤,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내 두 눈을 까만 밤하늘과 별빛만이 빼곡히 덮었다. 멍하니 바라보았다. 두 눈을 부릅 떠보지만, 모든 밤하늘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흩어져 있는 별들 사이에서, 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유성우를 기대하며 눈을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움직이기 일쑤였다.



뭔가 휙하고 지나가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들어 그 곳을 쳐다보면 이미 지나간 후였다. 몇 번의 그런 것들을 보고 난 뒤에도 나는 그것들이 유성우였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것이 유성우인지 흔들리는 별빛과 내 눈 사이에서 만들어낸 환상인지 알 수 없었다.



헷갈린 것은 유성우 뿐만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도 없는 이 고요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밤하늘만 올려다 보고있었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잖니, 내 눈이 담지 못하는 곳들도 흡사 이런 밤하늘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가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게 아니라, 이 밤하늘 속에서 그 쪽을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마치 이 하늘 속에 별들과 같이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있는 공간과 내가 보는 공간간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오랜만에 이렇게 올려다보는 하늘이었다. 유성우를 보지 못해도 좋았다. 왠지 우주를 본 느낌이었다. 밤 하늘에 둥둥 떠있는 기분을 주었다. 유성우 대신 내가 그 밤하늘에 자취를 남기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더 좋을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유성우를 내가 만난다면 그건 내가 미처 눈을 감기도 전에 사라질,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 할 것이다. 그 찰나의 시간을 위해 이토록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아니, 그 찰나의 시간동안 만날 유성우에게, 내가 지니고 있던 이 무겁고도 소중한 소원을 바란다는 것이 참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 유성우는 아마 오래 전에 이미 떨어졌던 별 이었을 것이다. 내가 침대에서 그냥 잠들었다면, 아픈 목에 고개를 잠깐 숙이거나, 눈꺼풀이 눈을 덮는 순간에 지나간다면 영영 못 볼 별이었다.



그 유성우가 어떻게 생겨나 어떻게 지내다 어떻게 사라질지 알 수 없다. 물론 나라는 존재도 그렇다. 다만, 유성우의 긴 생 중 또 나의 생 중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만나 그 시간을 공유한다면. 서로 몰랐던 존재를 그 순간이나마 확인하게된다면. 그것 만으로도 짧지만 의미있는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그 별이 희미하게 밤하늘에 흔적을 남길 만큼의 시간을 공유한다. 그것은 아마 내 소원이 모두 이뤄질만큼의 확률보다 희박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유성우를 보게 된다면,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될 터였다.



유성우를 만난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어두운 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내 소원들을 헤아린다. 만나기를 바라며 움직이지 않고 별들을 헤아린다. 작은 별들 사이에서도 각기 다른 크기와 빛을 가진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한번도 만나지 않을 수 있었던 어떤 존재와 만난다. 언제나 같은 밤하늘이지만, 그 짧은 순간이 오늘의 밤하늘을 어딘가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이런 오늘 밤이 지나면 내가 바라던 것이 이루어질 것 같은, 왠지 모를 특별함을 준다.



올해는 가을이 길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주 하늘을 들여다 봤다. 콧끝이 시리고 맨발은 자꾸 움츠러든다. 앞으로 오늘 처럼 오랫동안 길게 밤하늘을 바라보기엔 어려울 것 같다. 겨울이 온다. 가을이 가는 모양이다. 오늘, 유성우가 떨어지는 날이라 다행이었다. 그 모양을 이렇게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41일간 해가 떠있던 나의 여름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