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요즘같이 살을 에는 것 같은 날씨에 성급하게 달리다간 부상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스트레칭과 워밍업으로 몸에 열을 충분히 올리고 나서 집을 나섰다.
발을 11자로 정렬하고, 케이던스를 의식하면서 발을 구르고, 허리를 곧게 펴고, 호흡에 집중했다. 그러자 몸이 자리 잡히는 느낌이 들면서 달리기가 편안해졌다.
겨울에 달리면 몸 안쪽에서부터 오르는 열을 밖의 찬 공기가 눌러주면서 몸은 꽤 효율적인 공냉(空冷) 모드가 된다. 내가 겨울 러닝을 좋아하는 이유다.
나는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인지라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더운 날씨보다는 차라리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 날씨가 좋다. 그러면서 또 수족냉증이 있어서 장갑 없이 달리면 손발이 저리면서 한없이 차가워진다. 참으로 번거로운 체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겨울 러닝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겨울은 수족냉증이 있는 러너에게 혹독한 계절이다.
수족냉증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손발이 찬 거야 몇 키로 참고 뛰면 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그건 수족냉증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겨울날, 장갑을 깜박하고 달리기에 나선 적이 있다. 달리기를 막 시작해서 재미를 붙이고 있던 참이었기에 나는 장갑정도는 없이 달려도 괜찮겠다고 섣불리(대단히 섣불리) 판단했다.
10km를 목표로 달리기를 시작한 나는 결국 반도 못 가서 포기를 선언했다. 달리기를 포기한 이유는 근육이 뭉쳐서도 아니었고, 숨이 차서도 아니었다. 손이 시려서였다. 나는 손이 미치도록 시려서 달리기를 그만둔 것이다.
달리기에 입문할 때만 해도 손이 시려서 달리기를 포기할 상황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기에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달리면서 손에 입김도 불어보고 손이 빨개져라 박수도 쳐봤지만(손이 얼어서 이미 빨개져 있긴 했지만) 모든 노력은 소용없었다. 얼음을 움켜쥔 듯 차가워진 손은 나중에는 피가 안 통하는지 찌르르, 찌르르 저려왔다.
저린 것도 잦아들고 손에 감각이 없어지자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겨드랑이에 두 손을 싸매고 집으로 돌아왔다. 겨드랑이에 손을 파묻으니 한결 나아졌지만 그 자세로 계속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는 날씨가 추워지면 어김없이 러닝화를 챙길 때와 같은 마음으로 장갑을 챙긴다. 사실 이번에 달리기를 하러 나가다 말고 장갑을 챙기는 걸 깜박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장갑을 챙기러 집으로 향하면서 문득 손이 찌르르, 찌르르 저렸던 그날이 생각났다. 싸늘한 과거를 생각하면서 나는 살며시 두 손을 겨드랑이에 싸맸다.
* 달리기 토막 상식 - 케이던스(Cadence)
케이던스는 1분당 발을 구르는 횟수를 의미한다. 달리기에서 좋은 기록을 내고 싶은 러너라면 본인에게 맞는 케이던스를 찾는 게 중요하다.
달리기에 이상적인 케이던스는 18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즉 60초에 180번, 1초에 3번 발을 구르는 게 달리기에서 이상적인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사람마다 다리 길이나 주법 등이 다르기 때문에 180이라는 수치를 참고해서 자신에게 맞는 케이던스를 찾아야 한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케이던스가 낮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통은 케이던스를 높이는 연습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케이던스를 높이는 과정, 즉 발을 더 빠르게 굴리는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발목에 무리가 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발목 운동을 꾸준히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러닝 어플을 이용하면 손쉽게 케이던스를 측정하면서 달릴 수 있다. 기회가 되면 케이던스를 측정하면서 달리기를 해보자. 자신만의 이상적인 리듬으로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G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