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커지는 조바심
필기시험을 나름 잘 치렀다고 생각했는데… 면접을 보기도 전에 떨어지고 말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합격자 명단을 몇 번이고 들여다봤지만 내 이름은 없었다.
생각보다 일찍 코너에 몰렸다. 카페를 그만둔 지도 어언 3개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국비 지원을 받으며 편집자 교육을 받는다는 계획이 무산된 이상 생활비를 다 까먹기 전에 서둘러 출판사에 취업해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잡코리아나 인크루트 같은 구인구직 플랫폼에는 이렇다 할 편집자 구인 공고가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게 알게 된 곳이 ‘북에디터’였다.
족히 20년은 됐을 법한 홈페이지 모습은 지금 당장 들어가 봐도 이 모습 그대로다(늦은 밤에는 서버 트래픽 초과로 접속이 불가할 수 있다). 출판 편집자 커뮤니티에서 알아본 결과 이곳에서 편집자 구인구직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북에디터 구인 게시판에 들어가려면 회원가입을 해야 하는데 웬걸, 생년월일이 중복이라 가입되지 않았다. 아이디나 주민번호도 아니고 ‘생년월일’이 중복이라는 게 무슨 말일까, 오래된 홈페이지 특유의 오류인 걸까, 생각하며 며칠 동안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수수께끼의 해답은 간단했다. 말 그대로 생년월일 중복을 피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생일을 ‘10월 99일’로 설정하고 나서야 이곳에 가입할 수 있었다. 메시지 하나가 명랑하게 떴다.
‘회원 가입을 축하드립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렇게 대망의 북에디터 구인 게시판에 입성한 뒤 서류 탈락이 이어졌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다루는 출판사만 지원하겠다는 각오는 조급해진 마음 앞에서 나약하게 시들었다. 서류 탈락이 10번째가 넘어가자 어린이 한글 공부 포스터를 만드는 출판사까지 이력서를 전방위로 뿌렸다.
20여 곳에 이력서를 넣은 결과 두 곳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공교롭게도 둘 다 마지막에 넣은 곳인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과 ‘좋은생각사람들’이었다. 서류 지원을 하면서 그래도 자소서 쓰는 실력이 늘었나 싶었다. 먼저 간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는 오랜만에 캠퍼스 공기를 마시고 설레하며 그곳에서 처음으로 문장 교정 시험과 출판사 면접을 봤다.
월간 〈좋은생각〉을 내는 곳으로 유명한 좋은생각사람들에서는 면접을 무려 한 시간을 봤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부터 잡지 콘텐츠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까지, 꽤 심오한 질문을 많이 받아서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면접을 겨우 마치고 일어서는데, 면접관 중 한 명인 월간지팀 편집장이 말했다.
“마침 점심시간인데, 시간 괜찮으시면 대표님과 같이 식사하고 가시겠어요?”
‘합격하고 싶다면 무조건 수락해야 한다.’ 본능이 내게 말했다. 면접이 끝나면 집에 가서 아내와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그러겠다고 덥석 대답했다.
그렇게 회사 옆 한정식집으로 가는 길, 아내에게 어쩌다 보니 점심을 면접관들과 먹게 됐다고 문자를 보내고 있는데 편집장이 말했다.
“이런 자리를 어려워하지 않는 편이신가 봐요? 흔쾌히 수락하시는 걸 보고 의외였어요, 저였으면 부담스러워서 거절했을 것 같은데.”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점심을 같이 먹자는 말은 예의상 한 말이었나, 사회생활을 할수록 빈말을 잘 알아차려야 한다는데… 이런 생각과 달리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서 커피도 같이 한잔하자는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편집장과 대표 사이에 앉아 아이스라떼까지 마시고 장장 두 시간 동안의 면접을 마쳤다.
얼마 후,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불합격 문자가 왔다.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본 면접이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마음이 담담했다. 좋은생각에서도 면접을 본 지 나흘이 넘어가고 있었기에 결과는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평소처럼 자소서를 고치다가 한숨 돌릴 겸 아내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면접 안내 연락을 줬던 좋은생각 편집장에게 전화가 왔다. 문자가 아닌 전화였다.
“안녕하세요, 좋은생각이에요. 얼마 전에 면접 봤다는 곳은 붙으셨어요? 떨어지셨다고요, 그러시구나… 그럼 저희와 같이 일해보시겠어요?”
메인 이미지 출처: SLAM DU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