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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편집자가 생성되었습니다

첫걸음을 내디딘 햇병아리

by 앵날


아내가 눈썹을 팔八자 모양으로 만들어 짠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그동안 고생 많았어, 축하해."


아내가 마치 내가 느껴야 할 보람까지 다 가져간 것처럼 마음이 덤덤했다. ‘이제 평일에 다시 출퇴근을 반복해야 하는구나’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나 간사하다. 그토록 바랐던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게 됐는데 나는 간절했던 마음은 금세 잊고 쳇바퀴 도는 사회생활로 돌아가야 하는 일로 치부해 버렸다.


그래도 출근할 때 입을 옷을 사러 다니고, 입사 서류를 작성하고, 예습할 겸 〈좋은생각〉을 읽으며 기대감이 커졌다. 마침 좋은생각이 전자책으로 나와 있어 손쉽게 읽을 수 있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재밌어서 2년 치 분량을 1주일 만에 게걸스레 읽어나갔다.


군대 가기 전에 일했던 자동차 도색 공장의 화장실에서 좋은생각을 즐겨 읽은 뒤로ㅡ당시 하루의 유일한 낙이었다ㅡ10년 만에 좋은생각을 다시 만나 에세이의 진실성이 주는 힘에 오랜만에 매료됐다. 내가 다닐 회사라고 생각하니 더욱 관심이 갔던 탓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곳에서 독자들을 울고 웃기는 잡지를 만들리라 다짐했다.


첫 출근 날 아침이 밝았다. 회사에 도착해 엉거주춤 인사하며 사무실로 들어오니 편집자의 자리가 4개 있었는데, 나와 같이 입사한 동기가 2명이었다. 편집자 4명 중 3명이 물갈이 된다는 사실에 느낌이 조금 싸했다. 이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편집장이 선수 치며 말했다.


“선임 편집자 분들이 일주일 동안 바짝 붙어 인수인계하면서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실 거예요. 모르는 거 있으면 선임자 분들이나 제게 언제든 편하게 물어보세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편집장은 언론학을 전공해 기자로 일하다 이곳에 들어왔고, 우리와 함께 일할 선임 편집자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나와 같이 입사한 두 동기는 모두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반면 나는 출판업과 가장 거리가 먼 미술사를 전공했다. 이 사실에 조금 주눅이 들었지만, 생각을 바꿔서 그럼에도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비전공자로서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에 용기를 얻기로 했다.


오전에 회사 출입문의 지문인식기에 지문을 등록하고, 인사 담당자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사내 메신저 프로그램 사용법을 익히는 등 각종 잡무를 치르다가 점심시간에 한정식집에서 20여 명의 회사 사람들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정신없이 이름과 얼굴을 익혔다.


제육 정식을 배불리 먹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편집자 업무 인수인계를 받았다. 간단한 기능이나마 엑셀도 처음 써 보고, 독자들이 응모한 글을 정리하고 지면에 실을 글을 추리는 법도 익혔다. 내 인수인계를 담당한 선임 편집자가 말했다.


“보험사용 좋은생각 특판을 따로 발행하기 때문에 저희가 보험설계사 분들을 주기적으로 인터뷰해 기사를 작성해야 합니다.”


순간 편집장이 면접에서 누군가를 인터뷰한 경험이 있는지 물어본 기억이 떠올랐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경험은 없지만 맡겨만 주시면 자신 있습니다.”라고 넉살 좋게 대답했는데, 막상 정말 해야 하는 일이라고 실감하니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선임 편집자가 인수인계 자료를 정리한 전자 문서의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고 다음 사항으로 건너뛰며 말했다.


“마침 내일 저랑 같이 일산으로 인터뷰 출장을 다녀와야 하는데, 이건 그때 인계해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가 아니라, 출장이요? 오늘 입사했는데 내일 출장을 가야 한다고요...?




이미지 출처: 카카오 웹툰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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