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돌라의 가치
지난밤, 본격적인 첫 번째 등반을 마치고 돌아와 베이스캠프 지하실에 둘러앉았다. 부상자를 체크하는 중, 지난가을에 생긴 내 무릎 상처를 보고 오늘 난 거냐고 물어온다. 호탕하게 웃으며 오늘 난 오른쪽 팔의 긁힌 상처를 보여줬다. 샤워하고 나오다 샤워부스 문에 긁힌.
다음 안건은 다음 등산에 관한 내용이다. 내일 비가 오지 않으면 등산 갈 사람을 확인.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를 알프스를 나는 놓칠 수 없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우리는 더 높은 산을 오른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오는 팀과 정상에서 만나기로 해 아침 일찍 출발한다.
분명 정상까지 2시간 20분이라는 표지판을 지난다. 배려 없는 오르막길. 20분밖에 안 지났지만 진지하게 곤돌라를 타러 내려갈까라는 고민이 들게 한다. 겨우 평지에 발을 내딛으며 확인한 표지판은 정상까지 2시간 20분 남았다며 우리를 기만하고 있었다. 평지의 행복도 잠시. 오르막길을 따라 하늘 높이 솟아있는 나무들의 뿌리를 계단 삼아 기어오른다. 1m 앞선 사람의 엉덩이가 눈높이에 보이는 경사.
천천히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보다 빠르게 올라가서 10초라도 쉬는 게 더 낫다는 것을 깨닫고 선두를 자청한다. 가장 편한 것은 멈추는 것 하지만 혼자가 아닌 터라 그럴 수 없다. 나무보다 높이 위로 올라가면 주변 경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점점 멀어지는 마을, 점점 더 가까워지는 구름을 느끼며 정상으로.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인간의 유한함을 느껴지게 한다. 끝났다는 안도감, 성공했다는 성취감에 젖어들고, 동시에 바람으로 땀에 젖은 옷을 말린다. 어젯밤 새벽까지 마신 맥주로 오늘 아침부터 계속 탈수 증상에 시달린 스테판은 오늘도 배낭 가득 맥주를 넣어오는 정성을 잊지 않았다. 이 맥주를 마시며 곤돌라팀을 기다린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난 똑같은 선택을 할 테지만 왕복 곤돌라, 쿠폰 할인가 22유로.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위에서 보니 더 반가운 일행들. 함께 돌로 이루어진 다른 봉우리를 올라보고, 호숫가에서 점심을 먹는다.
곤돌라 타기를 여전히 거부하고 다시 다른 길로 내려가는 길. 머리 위로는 뜨거운 햇볕, 발밑으로는 간만의 막중한 건장한 성인의 무게를 지탱하는 역할에 부담스러워하는 엄지발가락. 지루한 풍경. 녹초가 되어 숙소에 도착할 때쯤에는 우리 뒤로 바짝 따라오던 먹구름에게 거의 따라 잡혔다.
방에 들어오니 발바닥은 더 이상 걷지 않는걸 어색해하며 어쩔 줄 몰라한다. 씻고 저녁을 기대하며 식당으로 갔는데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샐러드 뷔페, 고기 없는. 모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가지나 달걀같이 유사 고기들을 잔뜩 먹을 심산으로 담아와 먹고 있는데 샐러드 애피타이저설이 제기된다. 얼마 뒤 정말 큰 뚝배기를 나르는 사람이 목격됐다. Käsespätzle. 고기는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며 식탁에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마지막 밤이라는 아쉬움에 쉽게 하루를 끝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