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 귀 기울이다
2019년 3월 30일
상큼한 과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바로 프랑크푸르트로 향한다. 어제의 기억은 이미 미화됐고, 어리석은 두 인간은 또 홀린 듯 스타벅스로 들어섰다.
한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윤택한 삶을 즐기는 유러피안에 동화되어 마인강변을 거닐며 여유를 즐기는데... 또 시작이다. 프랑크푸르트 메인 관광지인 뢰머광장에 다다랐을 때에는 긴장감 또한 최고치에 다다른다.
사진 찍는 관광객들 앞을 거침없이 지나 서둘러 큰 건물에 들어갔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에 혼자 화장실을 찾아보겠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결국 불쌍한 표정을 하고 데스크 직원에게 독일어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물었다. 말을 하는 동시에 더 나은 문장, 더 나은 발음이 생각난다. 직원은 친절히 영어로 길을 안내했다. 화장실은 2층이었다.
승원과 나는 안정을 찾았지만 이 건물을 나갈 마음이 없다. 급한 와중에 데스크에 올려져 있던 안내문구를 읽어버린 것이다.
‘이 전시는 어린이에게 부적절할 수 있습니다.’
줄곧 이런 전시를 찾아 헤매었었다. 얼마나 부적절할지 기대하며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사람 키 만한 새 모형들이 있었고, 네 벽면에는 단편 영상들이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전시장 안쪽으로 계속 이동하다 치즈를 탐하는 생쥐, 오이들, 기저귀를 찬 호랑이, 똥덩어리들이 한 침대에서 뒹구는 영상을 봤고, 경고문구가 더 강력해야 한다고 느꼈다. 전시 내용은 점점 극으로 치닫았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는 손바닥으로 아이의 눈을 가리기 바빴다. 전시 주제는 ‘인간 인내력의 한계 탐험’이었고, 전시는 주제에 부합했다. 매우 만족스럽다. (The Schirn Kunsthalle Frankfurt-Djurberg&Berg)
사실 프랑크푸르트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중앙역 앞 아시안 마트에 가는 것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돌아가는 비행기표에 위탁 수화물까지 추가한 승원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필요한 물건을 담았고, 난 그저 흐뭇하게 지켜볼 뿐이다. (나중에 그의 생일파티 사진에서 빛을 발하는 초록병들을 보고 다시 한번 더 미소 지었다.)
그의 큰 포부를 담기에는 캐리어는 너무나 조그맣다. 남은 음식들은 뱃속에 저장해 옮기기로 했다.
2019년 3월 31일
무심코 눈을 떠보니 10시가 넘어있다. 불면증이 완치되었음을 느낀다.
어제의 쇼핑으로 독일에 온 목적을 이룬 승원은 한없이 자비롭고 온화하다. 내가 사랑하는 공원인 Rosenhöhe에 그를 데려가고 싶다. 그렇게 공원을 한 바퀴 돌고는 최후의 만찬으로 또다시 마라탕을 먹으러 갔다. 1차 탐방 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차분히 바구니를 채우더니 20유로, 한화 약 26000원을 가뿐히 넘겨버린다. 그에게는 이곳이 고급 레스토랑이다.
버블티를 마시며 썰렁한 일요일의 다름슈타트를 멍하니 앉아 구경한다. 잔뜩 멋을 낸 십 대들을 훔쳐보다 다시 기숙사로 돌아갔다.
승원은 짐을 싸고 있다. 아시안 마트 물품들이 캐리어 속 옷들의 자리를 빼앗아버려 어쩔 수 없이 옷들은 승원이 몸 위로 계속해서 걸쳐진다. 그는 몸도 짐도 무거워진 채 공항으로 떠났다. 또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