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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Mar 07. 2020

(4) 프랑크푸르트: Schirn Kunsthalle

내면에 귀 기울이다

2019년 3월 30일

 상큼한 과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바로 프랑크푸르트로 향한다. 어제의 기억은 이미 미화됐고, 어리석은 두 인간은 또 홀린 듯 스타벅스로 들어섰다.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윤택한 삶을 즐기는 유러피안에 동화되어 마인강변을 거닐며 여유를 즐기는데...  시작이다. 프랑크푸르트 메인 관광지인 뢰머광장에 다다랐을 때에는 긴장감 또한 최고치에 다다른다.


 사진 찍는 관광객들 앞을 거침없이 지나 서둘러 큰 건물에 들어갔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에 혼자 화장실을 찾아보겠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결국 불쌍한 표정을 하고 데스크 직원에게 독일어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물었다. 말을 하는 동시에 더 나은 문장, 더 나은 발음이 생각난다. 직원은 친절히 영어로 길을 안내했다. 화장실은 2층이었다.


 승원과 나는 안정을 찾았지만 이 건물을 나갈 마음이 없다. 급한 와중에 데스크에 올려져 있던 안내문구를 읽어버린 것이다.


 ‘이 전시는 어린이에게 부적절할 수 있습니다.’


 줄곧 이런 전시를 찾아 헤매었었다. 얼마나 부적절할지 기대하며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사람 키 만한 새 모형들이 있었고, 네 벽면에는 단편 영상들이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전시장 안쪽으로 계속 이동하다 치즈를 탐하는 생쥐, 오이들, 기저귀를 찬 호랑이, 똥덩어리들이 한 침대에서 뒹구는 영상을 봤고, 경고문구가 더 강력해야 한다고 느꼈다. 전시 내용은 점점 극으로 치닫았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는 손바닥으로 아이의 눈을 가리기 바빴다. 전시 주제는 ‘인간 인내력의 한계 탐험’이었고, 전시는 주제에 부합했다. 매우 만족스럽다. (The Schirn Kunsthalle Frankfurt-Djurberg&Berg)


 사실 프랑크푸르트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중앙역 앞 아시안 마트에 가는 것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돌아가는 비행기표에 위탁 수화물까지 추가한 승원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필요한 물건을 담았고, 난 그저 흐뭇하게 지켜볼 뿐이다. (나중에 그의 생일파티 사진에서 빛을 발하는 초록병들을 보고 다시 한번 더 미소 지었다.)

 그의 큰 포부를 담기에는 캐리어는 너무나 조그맣다. 남은 음식들은 뱃속에 저장해 옮기기로 했다.


2019년 3월 31일
 무심코 눈을 떠보니 10시가 넘어있다. 불면증이 완치되었음을 느낀다.


 어제의 쇼핑으로 독일에 온 목적을 이룬 승원은 한없이 자비롭고 온화하다. 내가 사랑하는 공원인 Rosenhöhe에 그를 데려가고 싶다. 그렇게 공원을 한 바퀴 돌고는 최후의 만찬으로 또다시 마라탕을 먹으러 갔다. 1차 탐방 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차분히 바구니를 채우더니 20유로, 한화 약 26000원을 가뿐히 넘겨버린다. 그에게는 이곳이 고급 레스토랑이다.


 버블티를 마시며 썰렁한 일요일의 다름슈타트를 멍하니 앉아 구경한다. 잔뜩 멋을 낸 십 대들을 훔쳐보다 다시 기숙사로 돌아갔다.

 승원은 짐을 싸고 있다. 아시안 마트 물품들이 캐리어 속 옷들의 자리를 빼앗아버려 어쩔 수 없이 옷들은 승원이 몸 위로 계속해서 걸쳐진다. 그는 몸도 짐도 무거워진 채 공항으로 떠났다. 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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