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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Oct 29. 2019

초대받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곳 (2)

 타지에서 혼자 사는 것의 장점이자 단점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아예 다른 사람으로 살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관계를 갈망한다.


 청각 세포분열이 완료되기도 전부터 적어도 매주 찬송가를 들었던 세포 덩어리는 계속 분열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 가족은 적어도 매 주일에는 교회를 가는 것이 선택이 아닌 디폴트 값으로 존재하는 집단이었다. 교회를 나가기 위해 결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안 나가는 게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몇 년 전, 우리 가족은 시카고에서 시작하는 미국 국토 횡단을 목표로 하는 자동차 여행 중이었고, 라스베이거스를 향하는 도로 위에서 일요일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인적 드문 도로에 교회가 있을 리는 만무했고, 가장 가까운 교회에 간다고 하더라도 예배시간은 끝나 있을 상황이었다. 에그머니! 이번 주는 힘들겠군!


 메마른 땅을 지나 십자가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교회에 도착했을 때는 예상했던 대로 예배가 모두 끝나고 사람들도 모두 돌아간 후였다. 예배가 없다는 관계자에게 가족 예배를 드리겠으니 예배당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말하는 아버지.


우리 학교는 한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학당을 연 것에 그 근간을 두고 있어, 의무적으로 매주 채플을 들어야 한다. 교환학기에는 일주일에 한 번 한 학기 동안 총 8번 교회에 간 것이 확인되면 채플 학점을 주고 있다. 매주 아침 대강당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을 한 번만 상상하더라도 교회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구글맵에 가까운 한인 교회를 찾아보는데 얼마 전 만난 친구가 구글 포토에 익숙한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 교회로 가야지.


이 교회는 독일교회로 독일 사람들이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나면, 오후에 한인 예배를 드리는 식이었다. 예배 후에는 한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사실 처음에는 이 한식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추석/추수감사절/성탄절/설날과 같은 명절이 끼어있는 주에는 월요일부터 기대감을 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메인 메뉴보다 김치나 나물에 젓가락이 향한다.


 하지만 매월 둘째 주에는 오전에 예배를 드렸고, 이때에는 오후에 독일 사람들이 오므로 음식 냄새가 남지 않도록 한식이 아닌 양식을 먹어야 했다.


 그렇게 양식이 나오는 10월의 어느 일요일, 나는 교회 대신 여정(구글 포토 속 주인공)과 함께 가을을 맞이하는 의미로 고구마와 밤을 구워 먹기로 작당한다. 예상보다 일찍 떠진 눈을 다시 감는 대신, 'call a bike'라는 독일 따릉이 자전거를 타고 여정이네 집 주변 hochschulstadion을 돌기로 결정했다. 초행길이라 헤매는 것도 잠시 금세 이곳 지리를 파악했고, 같은 경로를 계속해서 돌고 있었다. 왼쪽으로 꺾어야 하는 갈림길, 갑자기 머릿속은 오른쪽으로 꺾을 것을 강하게 주장하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흙먼지가 일고, 뒤편에 있던 사람들이 이곳에 도달하기 전에 현장을 벗어나기로 한다. 흙바닥에 벌거벗은 채 온몸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에어팟을 주워 들고 무거운 고철덩어리를 끌고 가 반납한다. 하필 그 날은 반팔, 반바지를 입은 몇 안 되는 날 중에 하나였고, 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 걸어도 내 양손바닥, 양팔꿈치, 양 무릎의 피는 자연스러운 내 표정을 감안하더라도 도저히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구워도 구워도 야속하게도 수분을 머금어 한 입 베어 물면 아삭한 군고구마와 그 고구마 옆에 있어서 겨우 봐줄 만한 밤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트램 안. 맞은편에 앉으신 백발의 할머니가 걱정되는 얼굴로 무언가 물으셨지만 장식용 귀밖에 없는 나는 미소로 밖에 화답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는 일정이 있지 않는 이상 성실하게 교회를 나갔고, 이는 후회 없는 선택이었고,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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