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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진 Feb 11. 2023

당신의 밤은 안녕한가요.

 



당신의 심해는 안녕한가요.


밤을 이루는 것은 별과 잠과 꿈입니다. 어둑한 밤은 별로 새겨졌고, 별은 잠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잠은 꿈을 환상하게 합니다. 그렇기에 밤을 잃으면 별을 잃는 것이고, 별 없다는 것은 잠을 부정하는 것이고, 부정당한 잠에 꿈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잃는 게 있다면 얻는 것도 있겠지요. 저는 잠을 잃은 대신 고독을 얻었습니다.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잠 잃은 밤을 밤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저의 두뇌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결국 별, 잠, 꿈을 잃은 그 캄캄한 순간을, 그 고독의 순간을 ‘심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저는 깊은 불면의 심해를 사는 작은 인어입니다. 달빛조차 비껴가는 어둠 속에서 저 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뭐라도 하기에는 하루를 넘치게 살아 피곤했고, 밖으로 나가기에는  밤이 숨긴 위협이 두려웠습니다. 때로는 엄마가 풍기는 술냄새를 홀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야식은 아주 잠깐 배를 채워줄 뿐, 행복을 불릴 수는 없었습니다. 북적거리던 세상이 고요히 잠든 이 밤. 저와 말을 나누어줄 타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저마다의 바다를 맞이하여 밤에 빠졌으니까요. 남과 잠 때가 다르다는 것은 이리도 서글픕니다.


바다가 깊어질수록. 색이 짙어질수록 수심은 깊습니다. 짙어집니다. 세겨집니다. 수심이. 저의 수심이. 그 수심이 깊어지다 못해 짙어지면 고독이란 죽음에 다다르게 됩니다. 고독이 주는 수압은 실로 대단합니다. 발버둥 치지 않으면 금세 찌그러져 쥐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살기 위해 미친 듯이 뭍으로 헤엄쳤습니다. 유광층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따뜻해졌고, 인조적인 밝은 빛이 보였습니다.


빛은 정체는 어느 선박이었습니다. 그 선체의 갑판에서, 낮을 살던 자들의 잔상이 선상 축제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는 낮의 거리를 활보했던 사람들이 남긴 이야깃거리가 모여 만들어진 유령선입니다. 배의 이름은 ‘세이렌’. 불면증에 시달리는 인어들을 홀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름 모를 작가의 소설, 어느 심리학자의 에세이, 아마추어 기자의 어설픈 기사문. 여행자의 담백한 칼럼. 인어의 방주란 온통 이런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렇다 할 선장은 없습니다. 그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수면 근처를 배회하다가 아침을 맞이할 뿐입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인어들은 이야기 배를 찾아다녔습니다. 물론 저도 그 무리에 포함됩니다. 그것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야깃거리는 제 마음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슬픔이나 고독은 잊어버리게 했습니다. 저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세이렌은 인어들 사이에서 유명합니다. 왜냐하면 심해의 하늘이라 불리는 칠흑에 떠오른 유일한 별이거든요. 그러므로 저는 이야기 배를 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배는 활기가 넘쳤습니다. 온갖 도시와 문명을 등에 업은 채였습니다. 네온사인도 반짝였습니다. 그 점이 참 특이합니다. 동료 인어에게 듣기로는, 네온사인이란 밤을 방황하는 자들이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낮을 살던 자들의 배에 네온사인이 보인다니. 저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낮을 사는 사람의 마음에도 외로움이 있는 건가요. 저는 그들이 잠을 잃지 않아서 행복한 줄로만 알았는데. 실은 그들도 고독이란 중력에 발이 묶여 허덕이는 건가요. 제가 심해에서 외로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감추었던 거군요. 짙은 그림자를 억누른 채 한껏 견뎌냈던 것이었군요.


저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물 밖으로 나가면 진짜 별이 진짜 하늘에서 반짝인다던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빛 한 조각 찾을 수 없습니다. 그저 심해 같은 밤하늘이 눈을 부라리며 저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등대까지 빛이 나가 껌뻑거렸습니다. 수평선 위아래 전부 심해에 정복당한 것입니다. 온 세상이 고독에 잠식당한 것입니다.


심해의 하루나, 육지의 하루나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밤을 방황하는 사람이나, 낮을 사는 사람이나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불면하는 자의 고독이나, 숙면하는 자의 고독이나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그냥, 다들 텅 빈 가슴 부여잡고 먹먹하게 살아갈 뿐인 겁니다.


걱정이 됩니다. 저는 고독을 물리칠 저만의 세이렌을 찾았는데. 낮을 사는 자들은 어떡하나요? 그들의 고독과 피로를 물리칠 세이렌은 어디에 있나요. 마음을 채워주는 이야기 배가 없다면 세상 파도를 버티기 힘들 텐데. 금세 심해에 빠질 텐데. 표류자가 될 텐데.  또 수심이 깊어졌습니다. 저는 타인의 세이렌을 찾기 위해서 꽤 오랫동안 바다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수확은 없었습니다. 저는 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육지로 올라가자. 해저 마녀에게 목소리를 건네고 두 다리를 얻자. 글 솜씨를 건네받자. 내가 가진 심해의 이야기로 빛나는 방주를 만들자. 그렇게 고독한 자들의 세이렌이 되자.


끝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자.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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