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걸렸는데 안심이 됐다

몸은 아파도 마음은 편안할 수 있는 1주일간의 격리가 시작되었다.

by 보통의 다지

기어코 하루 확진자가 60만 명에 달했다는 기사가 떴다. 그리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 되었다. 확진 판정을 받은 건 이번 주 월요일. 스페인 여행이다 취업준비다 뭐니 하면서 미루다 세 달 만에 내려가는 집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건소에 가서 검사도 받고 기쁜 마음으로 내려가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랑 밤새 수다를 떨었는데 아뿔싸... 동생이 양성 판정을 받았단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목 아픔과 기침 증상이 시작되었고 나 역시도 확진자가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다른 가족들은 무사했다는 것.


처음에는 정말 억울하고 짜증이 났다. 처음 코로나가 기승을 부렸을 때 각종 인종차별을 당하면서도 호주에서 두 겹씩 마스크를 끼고 살면서 바이러스로부터 힘들게 나를 지켜냈었고, 이번에 스페인에 갔을 때도 걸리지 않기 위해 사람 많은 곳은 최대한 피하면서 주로 숙소 안에서 끼니를 해결했었기 때문이다. 당시 30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던 스페인에서도 독감으로 고생은 했지만 결국 음성 판정을 받고 한국에 돌아왔었다. 조심 또 조심을 하면서 살던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코로나에 걸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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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도 잠시, 약을 타고 방에 갇혀 있자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오랜만에 추억이 가득한 나의 방에서 엄마가 정성껏 챙겨주시는 밥을 먹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얼마만인지. 아마 고3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4일째가 된 지금, 콧물과 잔기침은 멈추지 않고 아침마다 변성기 남학생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평안하다. 얼마 남지 않은 돈을 털어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다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지난해 나를 덮쳤던 우울증이 또 한 번 나의 방문을 두드렸었다. 면접 때의 트라우마가 나를 괴롭혔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마음을 롤러코스터로 만들었다. 하루는 생기가 넘쳐서 이것저것 부지런히 살다가도 그다음 날에는 침대에서 멍을 때리다 이유 없이 우는 날이 생겼다. 긍정적인 에너지와 위로를 얻고 싶어 친구들을 만난 술자리에서는 위로 대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차가운 현실만을 듣고 와 또 한 번 좌절했고, 유독 추웠던 그날 나는 정처 없이 늦은 밤거리를 걸으며 마스크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확진자가 되자 친구들은 이제야 차가운 현실을 말하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그 자리는 "푹 쉬어, 열심히 했으니까 좀 쉬었다 가도 돼.",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아프지 말자." 등과 같은 따뜻한 말로 가득 찼다. 부모님 역시 더 이상 내 앞에서 한숨을 쉬시지 않았다. 28살 백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바쁘게 지냈었다. 다만 누구나 인정하는 안정적인 직업과 수입 거리가 아직 없다는 것. 작년 7월 인턴이 끝나고 마케팅 수업도 들었고 단기 인턴도 하고 스페인 여행 후 1주일에 한 번씩 영상도 올리며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완성했다. 나는 뭔가를 꾸준히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결과가 없는 백수로 밖에 보이지 않았나 보다.


취업은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아서 조급해졌고, 주변 사람들의 말들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 자신과 내가 가진 역량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바보같이.


그런 점에서 이번 코로나 확진은 어쩌면 몸은 조금 아플지라도 마음은 아프지 말라고 누군가 보낸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더 나 자신을 믿고 칭찬해 주라는 메시지도 담아서 말이다.


"잘 이겨냈어. 코로나도 이겨냈으니, 다 잘될 거야."라고 나중에 말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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