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줄 알았는데, 사실 나는 괜찮지 않았나 보다.
나의 자취방에서 단 5분이면 엔터식스에 도착한다. 1층에는 롭스와 엄청난 크기의 이마트가 있고, 지하에는 웬만한 패션 브랜드들이 있어 쉽게 옷 구매가 가능하다. 2층에는 서점이 3,4층에는 푸드코트가 있으며 5층에는 CGV가 있다. 그래서 정말 혼자서도 지루함 없이 재밌게 놀았다. 공부하다가 싫증이 나면 서점에 가서 책도 읽었고, 10분 전에 영화를 예매해서 혼자 늦게 보고 온 적도 있다.
그리고 오늘 갑자기 냉이가 먹고 싶어 이마트에 들렸다. 꽤나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셀프 계산대가 어느새 새로운 기계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거의 2달 반 만에 이곳을 찾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게 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장보기는 행복이었다. 일이 끝난 후 매주 2번씩 장을 보면서 나에게 맛있는 요리와 술 한잔을 선물해 주는 것. 아무리 힘들더라도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유퀴즈를 보다 보면 기분이 꽤나 괜찮아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코로나에 걸려 본가에서 격리를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나를 방치해 놓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작년 이맘때쯤에 브런치에 정신과 상담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그때는 갑작스러운 큰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인턴에게도 성과를 요구하는 스타트업에서 첫 인턴을 하면서 몹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을 때였다. 여러 번을 고민하고 방문한 정신과는 나에게는 희망 한 줄기였으나, 의사 선생님은 그 희망을 무참히 차 버리셨다. 내 마음 상태나 변화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으셨고, 오직 그 약이 잘 드는지, 부작용이 없는지 5분 정도의 질의응답만 했으니까. 그럼에도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7주 정도를 간 후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나는 괜찮아졌다. 가장 큰 이유는 퇴사를 한 것도 있겠지만,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내일 배움 카드로 원하는 공부를 더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에 엉덩이가 20분마다 들썩이고, 난독증이 왔나 걱정도 됐지만 이 부분은 2주 만에 해결이 되었고 목표를 정하고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했다. 물론, 이 교육기관에는 불만이 아~주 많았지만 말이다 (데이터 알려준다면서... 배운 게 없는걸요?)
문제는 시원하게 프로그램을 끝내고 행복하게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후 시작되었다. 여행을 다녀오니 벌써 2022년의 두 번째 달이 되어 있었고, 실업 급여도 끊기고 이미 인턴 때 모아놓은 아주 소소한 돈을 쓰면서 버티는 서울 자취생활은 쉽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져 스타트업 마케팅부터 중소기업 그리고 이미 2번의 인턴을 했음에도 광고회사 인턴직에 지원했는데 면접까지 간 것도 있었으나 다 떨어졌다 결국은. 정말 아닌 것 같은 곳은 내가 취소한 곳도 있지만 말이다. 그 사이 돈도 다 떨어져 갔다. 나에게는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는 남자 친구가 있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였고, 아직 대학도 졸업 안 한 그가 자기가 사랑하는 분야에서 이미 3년 차 경력과 함께 끊임없이 채용 제안을 받는 것을 보고 부럽기도 하고 괜히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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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카페를 뒤지고 뒤져 찾은 괜찮은 병원. 집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으나 선생님에 대한 높은 평가에 다시 한번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 것인지 평일 오후 시간임에도 내 또래의 사람들이 앞에 7명이나 대기해 있었다. 그동안 나는 간단한 리스트를 작성했고, 1시간이 지난 후에나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다정하게 맞아주시는 선생님. 가장 먼저 어떤 일 때문에 왔냐는 질문에 나는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많아서. 길을 가다가 이유 없이 엉엉 울어버리는 것? 계단을 보고 굴러 떨어져서 몇 달간 좀 누워있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종종 있다는 거? 취미 부자였던 내가 만사 귀찮아진 것? 슈퍼 E 성향인 내가 친구들을 만나기를 꺼려하고 내 이야기를 안 하게 된 것?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다 말해 버렸다. 그다음으로는 어떨 때 힘드냐고 물으셨는데 이 역시도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나와 마스크를 젖혔다.
나를 달래주시면서 의사 선생님은 나의 과거로 주제를 돌리셨다. 특히 20대 이후의 삶에 대해서. 지금은 아니지만 나의 대학생활 전반에 대해서는 만족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는 그렇게 무언가에 대해 걱정하거나 불안해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고도. 마음먹은 대로 대체로 결과가 나왔고, 실패해도 어리니까 괜찮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였던 거 같다. 지금은 그런 시절이 있었나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 정도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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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마음을 먹고 간 호주에서 팬데믹 때문에 좌절된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한국에 온 지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오자마자 취준과 대학원을 찾아봤었는데 지금까지 재미있게 그분들의 유튜브 채널을 보고 있다. 한 분은 나와 같은 과를 전공하시고 독일에서 공부하다 얼마 전 대기업 인턴이 되었고, 한 분은 자신이 그렇게 꿈꾸던 예능 PD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맴돌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것도 안 한건 아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나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는 그대로고,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대학원도 열심히 찾아보다가 '내가 될까? 경력을 먼저 쌓아햐 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뒤로 미뤘고 계속하다 보면 되겠지 하며 알바 자리도 찾지 않고 몇 번의 면접을 보러 다니는 데에만 만족했다. 남들이 봤을 때 그게 더 괜찮아 보이니까. 28살이 되어서 알바나 하고 다녀?라는 말보다는 말이다.
근데, 이제 나도 달라지고 싶다. 먼 미래를 보지 않고,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내 멋대로 좀 살아보고 싶다. 한 번이라도 현재에 만족하면서 그리고 나의 행복을 가장 우선시하면서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아보고 싶다.
그리고 그 첫발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이태원 한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기로 했고, 점심까지 일을 할 수 있는 영어 유치원 면접도 보았다. 직장인 3년 차 정도 되어야 할 나이에 다시 알바생으로 후퇴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 안 한건 아니다. 근데, 지금은 그냥 살고 싶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을 해 보고 싶고, 강제로라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남은 시간은 내 행복을 위해 쓰고 싶다.
그리고 내년의 이 날에는 조금 단단한 내가 되어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