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에서 멈출 줄 알았던 코로나는 여전히 인종과 문화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오고 있고, 메뚜기 떼, 쓰나미 그리고 흑사병까지 인류를 덮쳤다. 이러다가 정말 큰 일 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럴 때일수록 세계가 뭉쳐서 서로 도와야 하는데, 다들 국가 장벽만 높이고 '나만 살자' 식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 기반이 약한 나라들은 정말 무너지고 있다. 물론, 한국도 안전하진 않다.
그러고 보니, 다른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내 앞날부터가 문젠데 뭐.
지난여름 졸업 후, 나는 취업 대신 워홀을 선택했다.
중 1 때부터 여행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나에게 워홀은 참 매력적인 선택지였고,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고 싶었다. 막 학기 자소서를 쓰면서 무너진 멘탈과 마음을 치유받고 싶었다.
그러나,
호주에 가면 뭐라도 될 줄 알았던 건 내 기대에서 그쳤고 (그래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건 행운이다)
결국 5개월 만에 그렇게 떠나고 싶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을 줄 알았다.
호주에서 어떤 삶이 행복한 지 알았기에, 노력하면 내 자리가 만들어질 줄 알았거든.
내 삶의 기준을 스스로 단단하게 세웠다고 믿었기에, 무너지지 않을 줄 알았거든.
그러나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나를 과도 평가한 것 같다. 아니, 세상을 너무 따뜻하게만 본 것 같다.
인국공 사태를 보고 과연 노력이 있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건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고,
함께 졸업한 친구들의 회사 뒷담을 듣고 있자니, 숨이 막혀온다. 나날이 올라가는 서울 월세에 세후 190이라는 돈을 받고 어떻게 돈을 모아 더 찬란할 나의 청춘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야근이 기본이라니. 언제나 얼굴에 웃음이 넘치던 에너자이저 친구가 8개월 만에 '나 건드리면 바로 죽여버릴 거야' 하는 표정으로 변한 것을 보며 회사 생활이 무서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사 강의를 듣고, 컴활 시험을 신청한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물론 원하는 기업이 있어서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있지만, 워홀을 신청할 때만큼 설레지가 않는다.
10000분의 1 정도.
생각해보니 내 인생은 나도 모르게 '따라감'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걸 깨닫고 나서는 '벗어남'을 시도했고.
중,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남들이 가니까 또 따라갔고,
그게 내 인생에 꼭 필요하고 최선인 줄 알았다.
풍족한 삶도 아닌데, 대학은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꾸역꾸역 서울로 갔고,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다. 대학만 서울로 가면 다 성공할 줄 알았고,
그중에서 남들이 선망하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과를 가면 내 인생이 좀 더 달콤해질 줄 알았다. 하루에 세 시간도 못 자면서 공모전을 준비해서 상을 타면 바로 취업이 될 줄 알았고, 높은 영어 성적이 있으면 서류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줄 알았다.
하지만,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고 이제는 한국 사회가 정해준 삶, 남들이 다 한다고 열심히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스스로 만들고 싶어 졸업식을 마치고 호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한국에 들어온 지 3개월.
호주로 떠나기 전에 했던 생각들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남들과 비교하고, 또 나랑 맞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남들이 하니까 또 죽을 노력을 해서라도 따라가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불면증이 다시 시작되었고, 몸 이곳저곳 아픈 곳이 생겨나 병원을 찾았다.
미국에 있을 때, 호주에 있을 때는 한 번도 겪지 않은 부정출혈과 무정혈 증상이 계속되어 결국 이번 주에는 호르몬 주사도 두 방이나 맞고 약도 먹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시간만 있으면 넷플릭스로 미드를 보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고 생각하고, 공모전 상금을 받으면 가장 먼저 비행기 티켓을 여행을 끊으면서 결국 내 마음은 한국에서의 삶을 걱정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호주 워홀을 갈 때도 그전까지 혹시 모를 내 미래에 대비해 수 없이 짧은 자소서도 고쳐보고, 인턴도 넣었다. 그렇다. 인정한다. 나는 100% 버리지 못했었다. 24년간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살아온 나는 무의식적으로 남들이 하는 대로 사는 삶을 따라가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해외 생활을 꿈꾸며, 브런치에 ‘취업 포기’ ,’ 해외 살이’ 등을 검색해 위로를 얻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