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인내심
오늘 아침 주민센터에 들릴 일과, 연체되었던 도서관 책을 갖다 주어야 했다.
사실 꼭 아침이 아니어도 되었지만 시간을 지체하면 나가기가 싫을 것 같았고, 주민센터에 낼 서류는 오늘이 마감이었다.
adhd 아이를 둔 엄마에게 아침이란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이다. 온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야 해결되는 한 시간 남짓의 시간. 그 짧은 시간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오전이 가장 힘든 이유는 약을 먹기 전이고, 아직 뇌가 덜 깬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침이 가장 힘든 아이들. 깨우는 것부터 전쟁이고, 밥 한 숟갈 양치하나 옷하나 그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알림장에 적어온 지각하지 않도록 신경 써 달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초2는 모른다. 선생님께 꾸지람 듣지 않는다며 눈을 희번덕하는데 '내가 싫다고!'를 속으로 외치고 아이를 어르고 달래 화장실로 밀어 넣는다.
당최 양치는 왜 욕조에서 하는 건지 치약 하나를 짜는데도 세월아 네월아 인지, 그놈의 옷은 매일 그렇게 골라도 고를 것이 없는 건지. 왜 바지를 올리다 말고 책을 찾는 거며 양말 신기는 왜 이렇게 힘든지.
늘 잘 먹던 약도 오늘같이 바쁜 날에는 몇 번을 실패하고 넘기는 아이. 너무도 이해가 안 가는 일들이 많아 매일매일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 겨우 겨우 등교를 완료한다.
오늘처럼 내가 바깥에 나가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더욱 예민해진다. 내가 화인지 화가 나인지
언제부터 이렇게 분노에 가득 찬 사람이 되었는가. 늘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화내서 미안해"
"괜찮아"
눈도 안 마주치고 나누는 짧은 대화 속 서로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다.
꺼져버린 핸드폰처럼 에너지 방전이지만, 운동화 끈을 묶고 집을 나선다. 이왕 나온 김에 좀 걸어야겠다. 뭐가 그리 바쁜지 바깥 풍경 한번 볼 새 없이 매일을 지내고 있다.
우울증에 가장 좋은 것이 햇볕이라는데, 스스로를 집안에 가두고 있는 나 자신에게 오래간만에 햇볕 샤워를 시켜준다.
상쾌한 공기와 예쁜 꽃 따뜻한 햇살에 마음마저 따스한 봄날 같다.
발길이 걷는 대로 가다 보니 떡볶이집 앞이다. 가게 앞 일광욕 하는 고양이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세상 편해 보이는 냥이를 보니 마음 한편에 부러움이 생긴다.
내 앞에서 떡볶이 한판이 끝났다. 하지만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세상 좋은 얼굴로 "괜찮아요 기다릴게요"라고 말하며 총 1시간여를 기다려서 떡볶이를 받아왔다.
떡볶이한테는 인내심을 발휘하지만 아이에게는 인내심이 없는 엄마.
나의 이중적인 모습에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아이. 사랑하는 막내에게 오늘은 좋아하는 치킨 한 마리를 선물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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