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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써 봄 Mar 05. 2024

그 애를 위한 가림막

꼭 그래야만 했을까?

지구는 왜 아무 말도 안 했을까? 학교 가기 싫다고 떼라도 썼으면 이상하다고 여겼을 텐데 아이는 매일 기꺼이 학교에 등교했다. 오늘 어땠어? 물어보면 ‘괜찮았어’라는 답이 돌아왔었고, 여느 아이들처럼 급식이 맛있었고...라는 이야기들을 했었다. 큰 문제가 있다면 부모에게 먼저 알리는 것이 상식이라 생각했기에 착석 외에는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들은 지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톡방이 만들어졌고, 그곳에 초대되었다. 단톡 방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지구가 혼나는 모습을 보며 다른 아이들도 아동학대를 받고 있는것이라는 같은 마음을 모아 목소리를 내주시기로 하셨다.


코로나 시절 등교하는 학교 책상에는 투명 가림막이 설치되었다. 지구가 2학년이 되고 나서 가림막 때문에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어쩔 수 없다고 아이에게 이야기하며 다독여 보낸 적이 있었다. 


단톡 방에서 가림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코로나라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 새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가림막이 받아쓰기용 가림막이라던데.. 애들이 너무 답답하지 않을까요?”

“투명 가림막 아니에요?”

“받아쓰기용으로 나온 3면이 다 가려진 유색 가림막이라고 해요.”

“그리고….”

“그 가림막을 쓰는 이유가 지구가 떠드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래요”


숨이 막혔다.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슴은 두근거렸다.

“지구 때문이라고요?” 

“네~ 가림막을 쓰고 나니 지구 떠드는 소리가 안 들려서 좋다!라고 아이들 앞에서 얘기했대요.”

“아이들이 가림막 뒤에서 휴대폰 게임도 하고, 만화책도 보고 한다네요... "


듣고도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아이가 떠드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가림막을 했다니... 아이는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그 아이에게 부모는 도움을 줄 수 없는 존재였을까? 여러 생각이 스쳤으나 사과가 먼저였다. 

단톡방분들께 지구 때문이라고 한다면 정말 죄송하다고,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고 제가 앞으로 노력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여러 정황상, 한두 명의 이야기로는 해결되기 힘들어 보였다. 부모님들과 학교를 함께 찾아가기로 했다. 아이가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머지 아이들도 함께 학대를 당하는 것이라고… 교장 선생님과 약속을 잡았기에 당장 담임에게 쫓아가 따지고 싶던 나의 개인적인 방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카톡! 이 울리며 카톡방에 사진이 하나 도착했다. 지인분이 학교에 방문차 갔을 때 아이반 교실 사진을 부탁드렸다고 한다.  사진으로 받아본 교실 풍경은 생각보다 끔찍했다. 모든 책상에 녹색 가림막이 올려져 있었다. 마치 고3 독서실과 같은 풍경… 3면이 가려진 높다란 가림막은 지구에게 너는 이 교실에 피해를 주는 존재야!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출처-픽사베이


지구 떠드는 소리 안 들려서 좋다!

라는 말이 내 귀에 생생히 맴돌았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지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같은 반 친구들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2학년이었던 꼬맹이들은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 채, 칠판 글씨가 안 보여 요리조리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고 한다. 내 아이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가슴은 바윗덩이가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아이를 대하며, 찢어지는 마음을 부여잡았다. 오늘은 어땠을까? 저 가림막 아래 섬처럼 부유하고 있을 아이의 얼굴이 오버랩되며, 눈물이 나려 할 때마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했던 것이다.  가슴의 돌덩이는 점점 더 무거워져만 갔다. 급기야 체력장에서 오래 달리기를 했었을 때처럼 숨이 가빠 오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야 했다. 나는 엄마다. 여기서 아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교장실에 찾아가기 전, 준비를 해야 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내 아이와 다른 아이들이 당하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첫 번째 나의 목표는 울지 않는 거였다. 

평소 나는 자주 울컥했다. 작은 일에도 눈물이 터져 나와 속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울지 않아야 했다. 울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지구가 겪고 있는 일들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으면 지구는 학교에서 지금처럼 부유물처럼 지낼 수밖에 없었다.

아동 학대에 대한 자료 수집을 하고, 노트북을 켜고 내가 써야 할 말들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해져야 한다. 지구를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엄마뿐이다. 



그때는 순진하게도, 곧 모든 상황이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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