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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써 봄 Feb 23. 2024

2반의 불쌍한 그 애 이야기

adhd는 절대 아닐 거라는 마음은 흩날리는 낙엽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걱정하는 친정엄마에게 절대 아니라고, 검사를 받아 증명하자고 큰소리를 쳤지만, 내심 마음속은 두려움이 있었다.


지구는 학교 생활에 대해 전혀 언급도 없고, 담임도 그렇게 아이를 보낸 후 전후 사정에 관한 연락이 없었다. 먼저 전화를 하기는 싫었다.


아파트 단지와 떨어진 빌라촌에 살고 있어 같은 반 엄마들과의 교류도 없었다.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아이는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할 뿐이었다.

유일한 친구 네모 엄마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병원 예약도 해 놓았다고 하소연을 한 후 전화가 걸려왔다.


“1반 00 아빠가 학교에 애를 데리러 갔다가, 지구를 봤대. 태권도 사범님 기다리는 지구한테  너는 엄마가 데리러도 안 오니? 그러면서 화를 내서, 세모 아빠가 애한테 너무 심하신 거 아니냐니까, 얘 부모 아니면 가만히 있으세요!라고 했대”

“그리고 00 엄마가 할 말이 있다는데... 전화하라고 해도 될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구에게 선생님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고맙다고 하고, 전화 부탁을 했다.


곧 00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지구 엄마, 이런 말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으로 시작된 통화는 평생 겪어본 적 없는 통증을 남겼다.




“아파트 단지에 그반 엄마들이 모여서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애들이 집에 와서 우리 반에 '어떤 불쌍한 애'가 있다고 했대요. 그 애가 선생님한테 매일 혼나고, 애한테 크게 화를 내고, 뭐만 하면 상담실로 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애를 억지로 주저앉히고, 그것 때문에 다른 애들도 너무 무섭다고 했대요. 그래서 그 애가 누군데? 물으니 지구라는 거 있죠?”


지구가 불쌍한 애라고? 짧은 정적 사이에, 모든 것을 이해해 보려 애썼다.


“ 어떤 엄마가 마음이 안 좋아서 상담할 때 ‘지구가 너무 많이 혼나는 모습을 보니, 아이가 학교를 가기 무서워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 애가 어떤 앤 줄 아세요!! 아주 이상한 애입니다. 주의력 결핍 장애라고요. 그 애 부모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라고 했대요”


“전혀 몰랐어요?”

“네.. 처음 듣는 이야기예요. 지구는 학교 생활 이야기를 전혀 안 해요”

“주변 엄마들은 지구 걱정을 많이 해요. 아이가 상처 많이 받았을 거라고”


나는 상담 때 한글이 좀 늦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착석이 잘 안 된다는 것 외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없었다. 알려줘서 고맙다고, 서둘러 전화를 끊고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주의력 결핍 장애라니! 정작 부모에게는 잘 지낸다고 하고, 다른 부모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걸 참아내고 있던 지구에 대한 답답함, 가장 늦게 알게 된 나에 대한 원망도 복잡하게 밀려왔다.


그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이가 “어? 쟤 이상한 애다!”라고 말했다. 내가 그 아이의 엄마인 줄 알리 없는 아이는 “쟤 이상해”라고 되뇌었고, 옆의 친구는 “친구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애들마다 다 다른 거지. 그런 말 하지 마” 하며 내 앞을 지나갔다. ‘이상한 애’라는 말이 비수처럼 마음에 꽂혔다. 왜 이상한 애냐며 그 아이를 붙잡고 싶었다.


“지구야. 학교에서 속상한 일들은 없었어? 혹시 선생님이 너한테 소리 지르고 혼내신 적 있니?”

“아니면 강제로 앉히거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이는 대답했다.


“응~ 내가 잘 안 앉아 있을 때 혼날 때 있어.  선생님이 전근 오셨잖아. 그래서 우리 학교 규칙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 친절하게 얘기하셔야 하는데 그걸 잘 모르시나 봐, 잘 몰라서 그러시는 거니까 괜찮아.”

“왜 엄마한테 혼난다고 얘기 안 했어?”

“엄마가 도와줄 것도 아닌데 뭘 얘기해”

친구들이랑은 어때?라는 물음에 “ 그냥 친구들 노는 걸 보는 게 재밌어”라는 말을 남기곤 곁을 서둘러 떠났다. 답을 찾아야 했다. 지구에게선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엄마가 도와주지 못할 일이라 생각하고, 자신만의 이해방법으로, 해결 방법으로 지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들이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가 물병 뚜껑을 제대로 안 닫아서, 가방이 젖어온 적이 있었다. 으레 남자아이들이 보이는 덜렁거림이라 생각했었다.

부러진 연필을 보고 물었을 때, 화가 나서 연필을 부러뜨렸다고 한 적이 있었다. 마음대로 잘 안 되는 것이 있어서 그랬다는 아이에게,  화난다고 물건을 부수는 것은 안된다고 당부하고 잊고 있었다.


그 작은 몸으로, 견뎌 내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너무 무심했던 걸까? 우리 애가 adhd인 걸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해맑고 밝은 내 아이, 그 아이가 교실에서는 폭군 같은 아이였던 걸까? 그런데 엄마가 전혀 몰랐다고?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고 '쯧쯧, 저 엄마가 가정교육을 잘못했네, 저 지경까지 뒀다고? 나였으면 잘 키웠겠다!' 했던 나의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가슴에 꽂혔다.


며칠 전 ‘adhd는 절대 아닐 거야!’라는 자신감은 사라지고, 우리 아이가 adhd 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초초함이 생겼다.



2반의 불쌍한 애. 그 애가 학교에서 겪은 일이 그것 만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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