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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써 봄 Mar 08. 2024

저는 지구 엄마 입니다.

인생 최악의 생일

교장실로 찾아가기로 하고,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했다. 우리 아이들이 겪는 일들이 아동 학대인 이유  초등교육법, 평생복지법등 관심도 없던 각종 법을 찾아가며, 근거를 찾아가려 애썼다.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가며, 지금이라도 녹음기를 가방 속에 넣어 보낼까 하는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지 못했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였다. 민낯의 교실 풍경을 마주하기에 아이보다 나는 더 약한 존재였다.


집에서 읽고 또 읽었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저는 지구 엄마입니다..로 시작되는 그 문장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버벅거려서는 안 된다. 매끄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지만 한 글자도 빼놓으면 안 되기 때문에 원고를 챙겨 나갔다.


나의 생일이었다. 눈부시도록 푸르고, 생기 있는 4월의 어느 날 태어난 존재였으나,  평생 잊지 못할 가장 서늘하고 슬픈 생일을 39년째에 맞았다. 그날의 기억은  학창 시절에도 가본 적 없던 교장실의 문턱을  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십여 명의 부모님과 교장, 교감이 자리에 앉았다. 침묵이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나는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원하던 대로 울지 않았다. 그렇기에 의견이 잘 전달되었으리라 믿으며. 다른 분들께서도 아이들이 전한 얘기들을 이야기하셨다. 모르는 게 있어도 묻지 못한다는 아이들. 선생님이 너무 화를 내서 무섭다고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짓는 분도 계셨다. 

하지만 학교란 벽은 높았다. 교육청과 민원을 말하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민원 넣어도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은 복잡해졌다.


그저 오해라며, 아이들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다고, 일단 지금 처음 알게 된 이야기니, 며칠 후 답을 주겠다는 말을 남긴 채 그날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며칠 후 만난 교감은 총회를 다시 하자고 했다. 얼마 전 있었던 온라인 학부모 총회는 엉망진창이었다. 교직 경력 30년이라는 것을 자랑하던 그분은 아마도 내 학창 시절에도 교사였겠지.


 줌 회의를 시작하고 어느 순간 담임의 마이크는 나오지 않았고, 그 후로 ppt영상만 보여주다 부모들이 마이크를 켜서 서로 이야기를 하자, 두 손을 흔들고는 서둘러 회의를 꺼버렸다. 그 후로 어떤 마무리도 없었던 총회. 그 총회를 다시 하면서 자초지종 설명을 하겠다고 했다.


힘들게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가림막은 치웠다. 변명만 늘어놓는 교감과 언쟁은 에너지 낭비였다. 날짜를 잡고 그날을 기다렸다.


그동안에도 고통을 받고 있을 우리 지구.. 2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병원 진료는 지금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기력 감을 더욱 심하게 했다. 빈자리가 있으면 꼭 연락 달라는 나의 간절함이 닿았는지 감사하게 며칠 후 취소된 진료가 생겼다는 연락이 왔다. 희망이 보였다. 병원을 다녀오면 답답한 속은 좀 풀릴 것 같았다.



가장 잔인한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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