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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써 봄 Mar 22. 2024

메디키넷을 아세요?

약물 복용이 시작되다.

아이와 함께 소아 정신과 대기실에 앉아있던 그 순간.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그날의 공기와 기분.

처음에는 우리 아이는 절대 아닐 거라던 굳건한 믿음은 차라리 진단을 받아 약물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바람으로 바뀌었다.

우리의 현실상 이사와 전학은 불가했고, 아이 셋을 데리고 홈 스쿨링을 할 상황도 안되었으며, 대안학교등도 경제적인 부분에서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우리가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아이를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약물뿐이었다.


 크게 소리를 내는 아이부터, 대기실에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가는 아이. 청년처럼 커다란 아이부터 이제 말을 조잘조잘하는 작은 아이까지 다양한 아이들이 대기실에 앉아있었고 그 옆의 엄마들은 모두 지친 기색이었다.


초진에 적을 내용이 많아 30분 일찍 도착한 병원. 우리 아이의 탄생부터 발달 상황과 부모의 양가 가계도, 가족력, 무엇이 아이에게 문제인지 세세하게 적어나가는 동안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

내용을 적을수록 내가 잘못했던 것들이 많은 것 같고, 이때 제대로 못해준 것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지구의 이름이 불리면 아이가 먼저 진료실로 들어선다. 몇 분이 흘렀을까? 지구가 나오면 대기실의 책을 쥐어주고 진료실에 노크를 하고 한발 들여놓는다.


선생님 앞에 앉았다.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오셨나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담담히 설명했다.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시며 기록을 하시던 선생님이 일단 검사를 해 보아야겠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검사는 2달 후쯤부터 가능하며, 검사 후 결과를 들을 때까지 2주가량이 걸린다고 했다.


2 달이라니. 예상과 다르게 돌아가는 상황에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2달 후에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라면 근 3달이 걸린다는 셈이다. 지구를 이 상태로 3달간 학교에 다니라고 하는 것은 고문과도 같았다.


"선생님 저희 아이를 당장 도울 방법은 없나요? 이대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안됩니다. 지금 당장 아이를 도울 방법은 없는 건가요?"

잠깐 당황하신듯한 선생님께서는 "초진으로 진단을 내리고 약 처방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라고 말을 떼시곤 "지구의 경우 현재 소견상 adhd로 보입니다."라고 했다.

진료실에 들어와 나눈 이야기와 아이의 움직임등으로 판단해 볼 때 지구는 adhd로 판정될 가능성이 높으며 보통 부모님들이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주치의의 판단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검사를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진단상 주치의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데 선생님의 판단은 adhd라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한숨을 돌렸다. 약을 복용하기로 하고 부작용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욕구를 억누르는 약이라 식욕도 사라지고 잠도 잘 안오기 때문에 꼭 오전 중에 복용하고 오전이 지나면 복용하지 말라는 당부도 하셨다. 


적응을 위해 받아 든 약 5mg. adhd아이들 카페를 들락날락 한 덕에 그 약이 어떤 약인지도 알았고,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약 한 알을 먹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반신 반의 하는 마음으로 약을 받아 들었다. 고민과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선택지는 한 가지뿐이었다.


약을 복용한 지구에게는 큰 변화는 없었다. 2주간 적응 과정을 거치고, 다시 병원을 찾아 약의 용량을 늘렸다.  학교생활을  볼 수 없으니 착석이 잘 되는지 살펴 달라고 담임에게 부탁하고 매일 경과를 물었다. 생각보다 약의 효과가 좋았는지 아이의 착석은 잘 된다는 대답을 받았다. 다시 2주 후 찾아간 병원에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주치의 선생님과 나는 기뻐하며 이대로 쭉 치료를 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정신과 약을 먹인다는 것은 엄마에게 참으로 큰 결심을 요하는 일이다. 관련 카페에서 아이 약을 먹어보고 몸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엄마가 겪어보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복용 후 한알 남아있던 지구의 약을 먹어보았다. 5mg 몸무게에 턱없이 부족한 양인데도 먹고 났더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어떤 아이가 "엄마 마음속에 파도가 안쳐"라고 했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남편은 심리적인 원인일 거라며 약 효과에 대한 얘기를 일축했지만, 그것은  현재 감정 상태가 의지로는 조절이 되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출처-픽사베이


그 무렵 안쓰럽고 안된 마음이라 지구에게 온 신경을 쓰고 있었고, 그로 인해 쌍둥이 동생들은 "엄마는 형아만 사랑한다"며 매일 울고불고하는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전화가 오면 학교일까 봐 가슴은 요동을 쳤고, 아이들을 보내고 잠시라도 쉬는 시간이 있으면 '지구는 지금 어렵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을 텐데 내가 이러면 안 되지'하며 몸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고,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아이들이 하는 부정적인 반응에 날카로운 칼을 세워 대답하며, 해준 음식을 먹기 싫다는 아이의 말에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오열을 하기도 하는 등.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해 버티는 중이었던 나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제 발로 정신과를 찾았고, 모자는 나란히 약물을 먹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 좋아질 일만 남았구나 했던 안도감은 잠시 자리에 잘 앉아있다는 대답이 나의 생각과 다른 의미였다는 것을 몇 주 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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