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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써 봄 Apr 05. 2024

포켓몬 카드의 속사정

약 복용 후 효과가 최고치에 올랐을 때에는 학교에 있을 시간이었기 때문에 

담임의 협조는 필수적이었다. 

아이의 상태를 알기 위해 매일매일 문자를 보냈다.

 

"지구는 오늘 잘 앉아서 수업했나요?"

"네 잘 앉아 있었습니다."

언제나 비슷한 답이었지만 잘 앉아있었다는 답에 안도를 했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착석이 잘 되고 있다고 하니 최소한의 약물만을 사용한 채 지켜보기로 하고, 나도 한숨 돌렸다.


몇 주 후 걸려온 그 전화가 있기 전까지는


'2학년 2반'

무슨 일일까? 두근 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고 전화 통화를 시작했다. 


"네 선생님 무슨 일이신가요?"

"어머님 지구가 요즘 포켓몬 카드를 가지고 다니잖아요.."


지구는 요새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포켓몬 카드 게임을 하겠다며 가방에 카드를 넣어 다녔다. 얼마 전까지 쉬는 시간에는 앉아서 색칠만 하도록 하셨던 선생님이 교실에서 게임도 하게 해 주셨다며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서로 자랑도 하겠다고 하기에 쉬는 시간에만 쓰기로 당부하고 보낸 터였다.


"내일모레 동료장학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포켓몬 카드 말고 한글 카드 같은 학습용 카드를 보내주시면 어떨까요?"

짧은 순간 나의 머리는 현재 대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내느라 바빴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하는 포켓몬 카드 게임과 동료장학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쉬는 시간에 포켓몬 카드를 가지고 노는 것과 수업시간에 동료 장학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어머님께서 지구의 착석을 위하여 포켓몬 카드를 보내주신 거잖아요. 지구는 수업시간에 포켓몬 카드를 꺼내놓고 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감선생님과 상의를 하였는데 동료 장학날은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하셔서요. 한글 카드 같은 것은 꺼내서 놀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제가 지구 착석을 위해서 포켓몬 카드를 보냈다고요?"

"네 어머니가 그렇게 보내신 거 아닌가요? 그것 때문에 지구 착석이 잘 되고 있습니다."

"지구가 그럼 수업시간에 책은 안 꺼내 놓고 포켓몬 카드놀이를 한다는 말씀이세요?"

"저는 어머니가 일부러 보내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화가 치밀었다.

"선생님 저희 애는 학교에 공부하려고 가는 거예요. 다른 애들 다 책 펴놓고 공부하는 시간에 포켓몬 카드를 꺼내놓고 놀라고 학교를 보내는 엄마가 어디 있습니까? 애가 그렇게 해도 못하게 하셔야죠."


"그러면 지구가 돌아다닐까 봐.."


"제가 무슨 일 있으면 얘기 꼭 해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 

"선생님 그럼 저희 지구 도움반이라도 보내주세요. 지구는 꼭 공부를 해야 합니다. "


"도움반은 장애 등급이 나오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실에서 애가 이상한 애 취급받으면서 수업시간마다 카드놀이를 시켜야 한단 말씀이신가요?"

"일단 정신과 선생님과 약물 조정에 대해서 의논하고, 포켓몬 카드는 내일부터 보내지 않겠습니다. 공부를 꼭 시켜주세요. "


바로 병원에 전화를 했다. 선생님을 급하게 만나야 한다고. 서둘러 병원에 달려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추가로 약을 처방받았다. 


그날 나의 좌절감은 이전에 느꼈던 감정과는 사뭇 달랐다.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은 이렇게 버림받는 건가 슬픔이 몰려왔다. 

수업시간 카드를 올려놓고 노는 아이와 그것을 지켜보는 주변 아이들. 교실 속 모습이 상상되며 심장은 터질 것 같았고, 마음속에 커다란 돌덩이들은 내 몸과 마음을 지하 100층까지 데려다 놓았다. 


내 인생 최고난도의 시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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