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팔레트

by 마음 써 봄

아들만 셋 키우는 엄마지만 첫째와 쌍둥이 둘째들의 성격은 사뭇 다르다.

첫째는 학교 생활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아서 궁금증 투성이인 반면에 쌍둥이 두 녀석들은 tmi가 심한 편이라. 학교 생활의 하나부터 열까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풀어놓는다.


오늘 미술 방과 후를 다녀온 두 녀석들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데 내용이 심상찮다.


"엄마 우리 팔레트 잘 못 가져갔어. 다른 애들은 다 고급 팔레트를 가져왔단 말이야."

팔레트에 물감을 짜서 말려 오라고 했기에 그렇게 보냈기에. "엄마가 준비물을 잘 챙겨 보냈는데 무슨 소리야?" 하고 물었다.


"00 이가 내 팔레트는 고급 팔레트고 너희들 팔레트는 만 원짜리 싸구려 같대"

"맞아 다 검은색으로 된 엄청 큰 팔레트 가져왔단 말이야."


미술 방과 후 선생님께서 준비물을 준비하라고 하시며 추천 제품이라고 전문가용 물감과 팔레트 구매 링크를 보내주셨다. 2학년 아이들에게는 굳이 비싼 제품은 필요 없을 듯하여 저렴한 제품을 사서 보냈더니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아이들의 말을 듣고 잠시 '새로 사서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애들이 그깟 팔레트에 기가 죽으면 안 되지'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잠시 초등 시절이 떠올랐다. 방 두 칸짜리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갔을 때,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 곳에 살게 되어 너무나 기뻤다. 연탄 창고 옆을 지나가야 나왔던 어두운 푸세식 화장실. 냄새가 지독한 그곳은 작고 작은 초2 여자아이에게는 너무나 무서운 곳이었다. 아래를 보면 빠질 것만 같던 곳, 귀신손이 쑥 나와 '파란 휴지 줄까? 빨간 휴지 줄까?'를 물어볼 것 같았던 그곳을 벗어난 것만 해도 천국이었다.


친구들 집도 다들 고만 고만했기에, 초4 때 40평이 넘는 집을 가보고는 문화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사는 친구들도 있구나. 우리 집이 '가난'하구나. 사춘기 시절 양복 입고 출근하는 아빠들을 부러워했었던 시절도 있었다.


물질의 가난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했기에, 자격지심에 살았던 지난 시간들이 오버랩되며 순간적으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뭐라고 말했어?"

"좋은 거 나쁜 건 없어 다 좋은 거야.라고 했어"

"그랬구나. 그런 말을 들으니까 어땠어?"

"속상했어."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엄마도 속상하다."

"엄마가 너희들을 위해서 정성껏 준비해서 보낸 미술 도구거든. 또 그렇게 얘기하면 '친구 부모님이 준비해 주신 물건을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실례야'라고 전해줘.

"그리고 너희들도 누구에게든 절대 그런 말을 해서는 안돼"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우선시하는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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