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을 기다리며.

by 마음 써 봄

얼마 전 도파민이 뿜뿜 한다는 글을 썼다. 새벽기상이 저절로 되며 에너지가 넘쳤던 그때. 그 도파민의 근원은 작은 알약 하나였다. 쑥색빛이 나는 알약 반알. 2년 전 겨울은 무기력한 증상이 몸의 이상인줄 알고 어영부영하다 넘어갔고. 작년 겨울엔 그것이 '무기력'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의 정체에 대해 선명하고 이해하기 쉬워진다는 뜻이다.


"선생님 무기력해요. 잠만 자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식욕을 부르는 약이라 초반에만 몇 달 먹고 끊었던 그 약이 무기력에는 효과적이라고 한다.

다시 받아 든 약을 꼬박꼬박 먹고 났더니 다시 의욕 뿜뿜 기력 있는 삶으로 돌아왔었다.


과거형이 쓰인 이유는 체중 증가 이슈로 14일만 먹었더니 약발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다시 시작된 무기력.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다시 침대로 들어가 오전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하루.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던 모든 것들이 귀찮아지고 집안일도 겨우 최소한의 것들로만 채워진 날들


낮잠으로 오전 시간을 모두 보내고 나면 자신에 대한 무능함과 죄책감이 버무려져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


이 정도 의지밖에 되지 않는 사람인가, 끝없는 자기 비하가 더 해져 우울해지는 마음은 덤이요. 학교와 회사에서 애쓰고 있는 다른 가족들을 생각하면 소위 배불러서 하는 고민인 것만 같은 나의 상태


결국 정기 진료로 방문한 병원에서 "요즘 어때요?"라고 물으시는 선생님께 "괜찮아졌다가 다시 무기력해졌어요."라고 이야기하고 말았다.


"힘들어서 도파민이 부족한 거예요. 체중 증가만 아니면 이 약은 꾸준히 써주면 좋아요."라는 대답을 듣자 며칠간 암흑 속으로 들어갔던 마음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못나서가 아니었어. 힘들어서야.'


40년 이상을 살았으나 여전히 나의 인생살이는 깜깜한 산길에 촛불하나 들고 나선 어린애 같다.

겨우 한 발짝 앞만 보이는 그 길에 전전 긍긍하며 걸어가는 내 모습이 안쓰럽고 위태롭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촛불이 꺼질까 잠시 멈추고 손으로 바람을 가려본다.


우울이란 존재는 그랬다. 언제나 나를 잠시 멈추게 한 그 아이. '우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 전에는 나의 못남이 버겁고 힘들었으나, 그 이름을 알고 난 뒤에는 잠시 멈추고 나를 보호해 본다.


우울증은 힘들다는 외침이다. 외면하면 잠시 숨었다가 더 큰 외침으로 다가오는 아이. 그래도 이름 붙일 병명이 있다는 것이, 쓸 수 있는 약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기쁘다.


남편에게 내 상태를 알리고, 달달한 커피 한잔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크림치즈 듬뿍 얻은 빵을 먹으며 쑥색알약 반알을 꿀꺽 삼킨다.


며칠뒤 돌아올 도파민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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