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없는 사회에서 산다는 건

by 바나바
“질문 없는 사회에서 질문자로 사는 건 형벌이지요”
사진 출처: yes24 인터넷 서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어령 박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그가 가진 통찰력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통찰에 입이 벌어집니다. 전 형벌을 받으며 살아갔습니다. ‘왜 굳이 저런 질문을 하지?’라는 표정을 하는 사람을 자주 발견했었죠. 그 표정을 마주하는 건 예상보다 더 힘든 일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좋아했던 것도 질문을 거침없이 하던 하버드대학생이 부러워서였습니다. 대학에 가면 영상 속 하버드생처럼 질문하는 사람이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더 질문 없는 학생이 되었죠.

슬픈 일입니다. 다른 이들이 보면 저는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입니다. 실상은 속으로 삼키는 질문이 많은 학생이죠. 더 많은 질문이 있어도 수업 상 진도 때문에 넘어가거나 바빠 보이는 교수님 때문에 질문을 지워버립니다. 계속 질문하는 학생을 귀찮게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 때문이기도 합니다.




수업이 끝나고 받은 쪽지


2022년 1학기 수업 마지막 시간에 같이 수업 들었던 여자 학부생이 저에게 작은 쪽지를 주었습니다. 생각하는 드라마나 소설 속 쪽지는 아니고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쪽지였습니다. 수업은 대부분 토론으로 이어지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수업에 손을 뻗어 질문하고 이야기하는 건 어렵게만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과거에 단련되었던 심장으로 아무렇지 않게 질문하고 반론했었죠. 그게 멋있었다는 이야기가 담긴 쪽지였습니다. (전화번호는 없었는데, 나중에 우연히 만난 친해지게 되었다는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수업의 마지막은 구술시험이었습니다. 교수님과 10분의 이야기를 하는 게 평가였죠. 변화를 시도하는 교수님의 도전이 좋았습니다. 평소 수업에 대한 생각과 필요한 최소한의 암기를 했습니다. 10분은 빠르게 지나갔고, 끝으로 교수님께서는 “덕분에 수업이 재밌었어요”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실은 교수님과 제가 가지는 생각은 반대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의견에 많은 반론을 들었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계속 물음을 던졌죠. 그럼에도 교수님은 화를 내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저의 모습을 존중하시면서 반론해주셨습니다. 학생들과 나눈 이야기를 통해 배우기보다 교수님의 태도를 많이 배운 수업이었습니다.



질문하는 법을 잊은 사람들


유명한 책인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후속작으로 이 제목의 책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에 질문을 하는 허무주의나 회의주의가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느 철학자처럼 생각하자는 말도 아닙니다. 질문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걸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당차거나 생각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빌리면 고집도 없어서 육아하기 제일 쉬운 편안 아이였죠.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문제를 바라보면서 '질문'이 들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요. 어떤 날에는 내 삶을 개선하고 싶은 욕망이었습니다. 질문 없이 바라본 세상은 행복해 보이나 그 속은 썩어있었습니다.



질문하고 또 질문하기


몇 년째 궁금해 묻고 물었던 질문 하나가 있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최근에도 묻고 다녔으니 오래되었죠. 교수님, 친구, 동생까지 다양하게 물었고 여러 서적도 읽었습니다. 해답이라고 할만한 답은 없습니다. 답이 있었던 질문은 아니었으니깐요. 1학년 때 읽었던 서적을 다시 한번 읽게 되면서 몇 년째 물었던 질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정리했던 답변과 거의 90% 유사했었죠.


‘그냥 그 책 읽고 답을 얻지, 왜 힘들게 몇 년 동안 질문하고 물어본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은 제가 처음에 든 생각입니다. 조금 더 고민해보니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게 답이야”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다면 스스로 의심했을 겁니다.


질문을 하고 얻은 건 눈에 보이는 정량적 결과물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자세를 배웠죠. 1차원적인 질문도 자주 합니다. 가끔은 먹는 거에 목숨 거는 것처럼 ‘무엇을 먹지?’하면서 고민하곤 합니다. 이런 글을 쓰고 나니 조금 부끄럽네요. 미식가는 아닌데 가끔 먹는 거에 진심이 됩니다.



질문하는 걸 꺼려하는 사회에서


책을 꾸준히 읽었던 것도 사람에게 질문을 다 물어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귀찮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만약 교수가 되었다고 보았을 때 한 학생이 끊임없이 질문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 학생이 내 강의를 방해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안 들 자신이 있나요. 이게 교육관의 차이고 우리나라 문화입니다.


그래서 책으로 도피를 했던 것 같습니다. 즐겁기도 했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진득하게 해 줄 사람과 멘토를 찾지 못했으니깐요. 가끔 유대인 교육이나 핀란드 교육 영상과 책을 볼 때면 부럽습니다. 저런 나라에 사는 학생들의 삶이 질투 났습니다.


사회와 현실을 탓하기에는 제 시간은 귀했고 그저 여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여전히 질문하는 게 두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조용한 사람들 속에서 ‘실수’와 ‘오답’을 말할까 망설여질 때도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하며 주변 사람들이 신경 쓰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루가 귀하듯이 오늘의 질문과 물음도 귀합니다.


애초에 질문이 생기는 게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계속 질문을 잊고 살아간다면 더 나은 게 무엇인지 잊게 되죠. 그럼에도 물음을 던지고, 또 질문과 싸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깊이와 특별은 답을 찾는 과정에서 주로 나옵니다.


이 사회에 살아가는 여러분은
질문이 있으신가요?
이전 01화교육에서 잃고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