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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바 Mar 12. 2024

나와의 대화가 좋아

대화가 좋아 5

거인의 노트를 읽은 적이 있다. 제1호 기록학자로 유명한 저자는 '인생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라는 부제로 <거인의 노트>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이 나의 인생을 바꾸었다! 이런 거 아니다. 덕분에 나와의 대화를 좋아하게 된 이야기에 가깝다. 


타인과의 약속은 쉽게 지키지만 나와의 약속은 깨기 쉽다. 타인과의 약속만큼 나와 보낸 시간을 귀중하게 여긴 난 고등학생 때부터 나와의 시간을 잘 찾아 보냈다. 혼자 카페에 가서 글을 쓰기도 했고, 마음에 드는 곳에 가서 사진을 찍고 편집하기도 했었다. 여전히 나와 시간을 잘 보내지만 '나와의 대화'는 어색해했다. 


키보드를 이용해서 쓰는 글은 '나와의 대화'보다는 주체가 있는 타인을 위한 글이었다. 그러기에 나와 독대하는 대화는 뒷전으로 미루곤 했었다. 거인의 노트를 읽다가 한 부분이 눈에 끌렸다. 


기록한다는 것은 어지럽혀진 방을 멀끔히 정리해 언제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당신의 머릿속 방을 깨끗이 정리해 언제든 적재적소에 맞게 꺼내 쓸 수 있는 생각을 차곡차곡 모아 둔다면 얼마나 자유로워질까. 그래서 나는 늘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기록하라"라고 말한다.

<거인의 노트> 중에서 


나만의 공간을 만드려고 하면 내가 나서서 무너뜨리고 있다는 걸 그때서야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중간에 조금 비싼(나의 기준에서는) 노트를 주문했었다. 디지털 세상에 기록하는 것과 아날로그 세상에서 기록하는 것의 차이를 알기에 구입한 것이었다. 


나와 대화하고 나니 


카페나 집에 혼자 있을 때 노트를 펼쳐서 나와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속 책을 읽고 요약을 하거나 강의 들은 걸 적었다. 들었던 생각을 적는 게 조금 어색했고 나와의 대화보다 남들의 대화가 더 적기 편했다. 


그러던 중 서울에 놀러 갔었다. 친구와의 만남 끝에 저녁 시간. 혼자만의 시간이 있었고 혼자 카페에 가서 서울 여행에서 느낀 점, 들었던 생각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7가지가 나왔고 마지막에 3페이지 정도의 글을 쓰고 나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때 적었던 글은 평소보다 훨씬 더 깊은 이야기가 있었고 솔직한 자신이 있었다. 남들에게는 말하기 부끄러운 말도 있었고 아주 사소해서 지나가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순간을 보내고 나니 나와 대화하는 일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미루지 말 것


나와의 대화를 노트에 적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딱 하나였다. '미루지 말 것' 참 미루기 쉽고, 방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내일이 당연하게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나 '내일'은 오늘만큼이나 가치 있는 시간이다. 


친구와의 대화, 연인과의 대화는 잘 미루지 않으나 나와의 대화, 나와의 약속은 언제나 미루기 용이하다. 혼자 잘 놀아본 사람이 논다고 했던가. 나와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나와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만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나와의 대화를 계속 미루는 걸 발견했다. 다음을 약속해서 다른 약속으로 미루는 내가 보였다. 우선순위로 올려야지. 올려야지! 다짐해 본다. 내일은 꼭 나와 대화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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