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가지 않는다면
문득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이 물음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대학교 1학년 대학에 대한 회의도 컸고 몸도 좋지 않아서 자퇴를 고민했기에 더욱 와닿는 물음이었습니다. 대학을 오기 전 학생들이 목적의식 없이 오는 걸 목격하곤 했습니다. '왜 대학을 가는가?'에 대한 고찰 없이 대학을 마치 아프리카 들소 떼처럼 앞에 있는 들소가 뛰기 때문에 함께 뛰는 거죠.
제 인생은 들소가 되지 않기 위해 들소 떼에서 옆으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던 것 같습니다. 개척자까지는 되지 못하지만 물에 휩쓸려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 정도는 될 듯싶습니다. 20살이 되기 전, 대학에서 가지고 싶은 역량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한참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라 '20대 때 꼭 해야 할 일'들에 관심이 높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세 가지를 잡고 졸업을 하기를 바랄 것 같습니다.
읽기, 쓰기, 말하기
끊임없이 독서하며 세상을 읽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새롭게 세상을 보게 된다. 독서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른다. 스마트폰 대신 책을 잡아라. 독서의 핵심과 본질은 스스로 하는 생각이다.
미친 독서 중에서
넷플릭스, 왓챠, 유튜브 아프리카 TV 등 다양한 영상 플랫폼이 있는 지금 시대에 유행은 짧은 영상입니다. 유튜브의 쇼츠, 인스타그램에 릴스가 유행합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짧은 영상을 찍고 이를 즐깁니다. 저 또한 남는 시간에 쇼츠나 릴스를 볼 때도 있습니다. 짧은 영상에 핵심을 담는 제작자의 노력을 보기도 하죠. 그들의 노력이 헛되거나 잘못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과 얻지 못하는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20살 대학에 오기 전에 고민했던 것 중에 하나가 '영상의 시대에서 읽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수업 전이나 교통을 이용할 때는 스마트폰을 잠시 넣고 책을 읽었습니다. 10분, 20분의 짧은 자투리 시간에 생각하는 연습, 글을 읽는 연습을 했습니다. 짧은 영상으로 대체될 수 있는 시간에 글을 집어넣었죠.
이 시간뿐만 아니라 긴 글을 읽는 연습, 생각을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분량이 얇은 책 가운데 두껍고 이해가 어려운 책을 끼어넣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번 읽었습니다. 읽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은 사실입니다. 어른들은 자신이 읽지도 않는 독서를 계속 권하곤 했죠. 그럴 때면 귀찮아지곤 했을 겁니다. 그 안에는 숨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
단순히 읽지 마세요. 생각 없이, 사유 없이 읽어내리는 글은 결국 자신의 삶에 들어오지 못하고 글로만 남아있게 됩니다. 그러니 멈추고 사유하고 생각하세요. 남들보다 빠르게 읽는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다독을 하지만 사유 없는 독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죠. 그래서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읽고 생각하고 또 고민하세요.
개인적으로 조던피터슨 교수의 강연을 즐겨 들었습니다. 짧은 영상을 보던 중 기억에 남았던 말이 대학생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요즘 대학에 대해서 진짜 어이가 없는 것 중에 하나가 아무도 학생들한테 글쓰기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얘기를 안 해준다는 거예요. 그냥 "이 숙제해"라고만 하고 왜 그 글을 쓰는지는 얘기를 안 해주는 거예요. 학점을 받기 위해서? 아니에요.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 글을 쓰는 거라고요. 생각을 제대로 하면 그건 살아가면서 더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만들어 줘요. 삶에서 거쳐야 하는 전투들에서 이길 수 있게 해 준다고요.
여러분이 제대로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글 쓸 수 있다면 여러분의 앞길을 막을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글 쓰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거라고요. 도대체 왜 얘기를 안 해주는지 모르겠어요. 글 쓰는 법이라는 건 누군가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예요.
조던피터슨 강의 중에서
모든 초고(草稿)는 쓰레기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사실을 명심하길 원합니다. 글을 처음 쓰는 사람의 초고가 100번을 퇴고한 글과 같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다르죠. 글쓰기는 멀리서 보면 쉬운 작업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손으로 작성하는 필기에서 키보드로 옮겨졌기에 더욱 쉬워진 일처럼 보입니다.
글쓰기의 논리, 문체와 구성실력, 질 높은 자료 사용을 보지 않는다면 '쉬운 일'처럼 여겨집니다. 조금만 들여봐도 글쓰기는 두뇌싸움이고 체력싸움입니다. 어젯밤에 쓴 글을 아침에 마주했을 때 기쁨이 넘치게 충만한 사람이 몇 없습니다. 역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쓴 작가도 그러할 겁니다.
주저 없이 써보는 것
대학을 가지 않는 이가 있다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글쓰기 결과를 생각하고 쓰지 말고, 글쓰기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권합니다. 제 글도 매일 글 쓰고 생각하는 걸 통해 돌아봅니다. 좋은 책을 거울삼아 제 글을 비춰봅니다. 하지만 꾸준히 주저하지 않고 쓰는 습관을 잘 길러둔다면 대학에서 하지 못한 어마무시한 일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앞선 읽기, 쓰기는 인풋과 아웃풋이 많지만 상호 피드백이 빠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폐쇄적인 피드백 방식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말은 다릅니다. 말은 자신의 말을 통해 남들의 변화를 빠르게 캐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꾼 말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도 있죠.
제대로 말하라는 건 '사기꾼'처럼 번지르르하게 말을 잘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이 아는 바와 생각하는 걸 오해 없이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걸 뜻합니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귀에 쏙쏙 하고 박히지만 어떤 사람은 말이 그대로 흘러내리기도 합니다. 말을 하는 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전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할 수 있어야지 사람들에게 '주체적'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하며, 스스로를 바라볼 것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비슷한 대화를 합니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 내일 일과는 무엇인지 정도 될 겁니다. 자신의 분야에만 있는 사람은 좁게 생각하고 좁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일부로라도 자신을 다양한 사람이 있는 곳으로 던지세요.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써보세요.
마지막에 가지고 가고 싶은 건 읽기, 쓰기, 말하기를 하기 위한 '듣기'입니다. 경청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습니다. 경청으로 한 사람을 감동하게 할 정도로 하지 못합니다. 경청과 공감은 이야기를 '듣는 일'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삶에 초대되는 일입니다. 초대에 응해 집에 들어갈지 아니면 초대장을 버려버릴 지의 선택은 본인의 몫입니다.
스마트폰, 바쁜 일과, 붕 떠있는 마음 등이 경청과 공감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대라고 하는데 제 생각은 듣는 걸 싫어하는 시대라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뿐 아니라 지혜가 있는 어른의 말을 듣고, 낮은 자세로 경청과 공감을 하는 일은 더욱 빛을 발할 겁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공감과 경청'을 못하는 제가 보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걸 듣는 일보다 좋아하기에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면서도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강연자를 꿈꾼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말을 잘해야 강연자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스토리와 잘 들어주는 자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저 들으세요, 듣고 또 들으세요.
대학을 가지 않는 이에게 하는 이야기라고 했지만,
대학을 다니는 저에게 한번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더 제대로 읽어라, 생각하고 사유해라
매일 쓰고 또 써라, 좋은 글이 아닌 글 쓰는 일에 집중해라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해라, 그리고 나를 돌아보아라
이 모든 일보다 듣는 일을 먼저 해라,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공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