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겨울의 일상들

by 솔바람

12월에 3주간의 짧은 방학이 끝나고 나의 어학 프로그램 마지막 학기가 1월 초순부터 4월 중순까지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리고도 어느새 6월도 끝나간다니..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갈 수 있나 싶은 날들이다.


여름은 해가 9시는 훌쩍 넘어야 지기 시작하지만 겨울은 서너 시만 되어도 컴컴해지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짧디 짧게 느껴지는 하루가 쌓여가는 공부와 과제에 눌려 내게는 더 빠르게 흘러갔다.

내가 공부하려는 전공은 정식 학기 개강이 9월이다. 원하면 5,6월 계절학기 동안 미리 몇 과목 시작할 수 있지만 어차피 졸업 날짜는 같기에 고민 끝에 그냥 마음 편히 쉬어보기로 결정했다.

9월부터 공부도 시작하고, 파트타임 일도 구해서 지내다 보면 지금과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게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12월에 접어들며 넬슨에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됐다.

캐나다의 겨울이 혹독하기로 유명하지만.. 나름 캐나다에서 제일 따뜻하다는 BC주의 겨울은 어떨지 궁금했다. 어떤 해는 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오고.. 어떤 해는 예년에 비해 적게 내린다고 들었는데 올 겨울은 어떨지 궁금했다.

6월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지난겨울은 역대로 눈이 적게 온 축에 해당한다고 한다.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아 운전하는데 크게 어려움도 없었고 고생하지 않아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야 여름에 산불이 날 확률이 줄어든다니 한 편으로 아쉽기도 했다.

우리 집 마당에 소복소복 예쁘게 쌓인 눈


핼러윈이 지나고 캐나다 사람들은 겨울에 스키탈 생각에 모두가 들떠있었다.

해가 짧은 겨울에 주로 무얼 하냐고 물으면 상기된 표정으로 스키, 스노우 보드, 스노우 슈잉, 크로스컨트리 스키 등등... 이곳 사람들이 신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도 스키는 두세 번 타 본 경험뿐이었고, 아들은 아직 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겨울이 그다지 기다려지지 않았고, 일조량이 적어 비타민D 부족으로 우울증이 올 수 있다는 말에 비타민D만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겨울을 맞이했다.


캐나다의 학교는 여름에 방학이 2달 이상으로 길고, 겨울방학은 3주 남짓으로 짧다.

방학기간 동안 아들이 무얼 하며 지내면 좋을까 알아보다가 스키캠프를 알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우리가 사는 West kootenay지역에는 좋은 스키장이 많다.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고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라 뽀송뽀송 파우더리 한 눈이 스키를 타기에 아주 좋다고 한다. 집에서 20분 남짓 달리면 있는 스키장에 아들을 위한 좋은 스키 캠프가 있어서 망설임 없이 등록했다.

1대 4로 운영하는 그룹수업인데 4일간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된다. 입장권, 리프트, 장비 렌털, 강습까지 모두 포함해서 430불대!

캐나다 역시 스키가 저렴한 스포츠는 아니지만 보통 이곳 사람들은 장비를 구비하고 있다. 그래서 저렴할 때, 시즌권을 구입해 시간이 될 때마다 매일매일 오는 사람들이 많다.


광활한 스키장의 사이즈와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해가 쨍하지만 산 위에 쌓인 눈은 포근하고 엄청난 스케일의 숲에 둘러싸인 스키장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이런 스키장이 집 근처라니 행운!


아들의 스키캠프는 4명이 정원이었지만 운 좋게 선생님과 1대 1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워낙 어렸을 때부터 온 가족이 스키를 접하니 이런 캠프가 필요 없었다. 게다가 캐나다 여자들은 어찌나 씩씩하고 체력이 좋은지 아기띠에 아기를 안고 스키를 타는 엄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내게는 너무나 놀라운 광경....!

그중 한 아기 엄마와 이야기를 잠시 나누게 되었는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자신도 아빠에게 안겨 스키를 처음 탔었다고 말해주었다. 대단한 사람들.... 하이킹 코스를 걷다 보면 등에 아이를 태우고 등산을 하는 씩씩한 엄마들도 있다. 한국에서는 모 여배우가 아이를 업고 등산했다는 내용이 인터넷 기사로도 올라왔었는데 캐나다에서는 흔한 일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각종 스포츠나 바깥 활동이 일상이다 보니 모두들 체력이 엄청난 것 같다.


캠프는 아침 8시 30분이 땡 하면~선생님과 만나 오전 내내 스키를 타다가 중간에 잠시 점심을 먹고 3시까지 쉬지 않고 또 탔다. 스키를 처음 접해보는 아들이 처음에는 조금 겁을 냈지만 첫날 점심 먹는 30여분을 제외하고 내내 선생님과 스키를 탔다. 둘째 날, 셋째 날.. 그리고 마지막 넷째 날.. 아들은 스키가 자기의 인생 스포츠라 말할 정도로 신나게 즐겼다. 우리가 여기 오지 않았으면 아들이 이렇게까지 스키를 좋아하게 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들의 학교에서 그리고 이 지역의 모든 학교에서도 겨울에는 다 함께 스키장에 간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학교에 따라 겨울 시즌에 2회 혹은 3회 전교생이 스키장으로 필드 트립을 간다. 아들의 학교는 3회로 정해져 있고, 모든 학생이 의무로 강습이 포함되어 있고, 렌털과 강습, 입장료 모두 해서 200불 정도 되는 가격이었다. 본인의 장비가 있다면 조금 더 저렴해진다.


한국에서 흔히 하는 스키는 다운 힐 스키, 새롭게 접한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장비가 훨씬 가볍고 레일 위를 따라 미끄러지는 느낌이 경쾌했다. 처음 탔을 때, 보기엔 쉬워 보였지만 초보자인 나에겐 전신을 움직이는 나름 고강도 운동으로 느껴졌다. 크로스컨트리는 레일이 따로 있는 초보자용 코스도 있고, 조금 더 실력이 붙으면 산속 경사가 있는 곳에서 타볼 수도 있다. 캐나다 사람들은 레일이 따로 없는 산을 걸어 올라가서 나무 사이를 누비며 스키를 즐긴다. 나의 시선에서는 모두가 국가대표 급으로 느껴졌다. 산속에서 스키를 즐기다 보면 작은 오두막에서 불을 쬐며 간식도 먹고 휴식을 취할 공간이 있다. BC주 세금으로 관리되는 국립공원인데 화장실도 레일도 오두막도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어있어 편리했다. 세금이 비싼 주인만큼 혜택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키 장비만 있다면 큰돈 들이지 않고 동네 산속에 도시락을 싸가 한나절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Nelson Nordic Ski Club. 아들 친구 가족과 함께한 첫 크로스 컨트리 스키

그리고 밤이 긴 겨울의 백미는 머리에 랜턴을 쓰고 한 밤중에도 즐길 수 있는 야간의 크로스컨트리 스키다!

상쾌한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캄캄한 산속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느낌이 새롭고 짜릿했다. 배낭에 간식을 챙겨 산속에 있는 오두막에서 불을 피우고 몸도 녹이고. 달빛이 밝은 밤이 기다려지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야생동물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조금은 긴장되는 시간


긴 겨울을 지나며 연말이 되면 캐나다 사람들은 파티를 즐긴다. 서로를 초대하고 모여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뜻깊게 보낸다. 그리고 감사한 사람에게 작지만 마음을 담은 선물(직접 구운 쿠키 등)과 카드로 표현을 한다. 특히, 마트를 가도 많은 것이 진저브레드 쿠키다. 이 쿠키는 북미 전역에서 크리스마스 문화와 따뜻한 정서를 상징하는 전통적인 음식이라고 한다. 우리가 새해에 만두, 추석엔 송편을 빚어 먹듯이 캐나다에서는 연말에 가족과 함께 쿠키 반죽을 만들고, 쿠키커터로 모양을 찍고 꾸미는 과정을 함께하며 보내는 연말의 따뜻한 전통이라 한다. 생강과 계피의 향이 꽤 강하게 나서 우리에게 생소한 맛이지만 캐나다인들에게는 추억의 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ressa의 정성 가득하고 귀여운 진저 브레드 쿠키

주변에 좋은 분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모여 나누고.. 비록 가족은 멀리 있지만 캐나다에서 만난 좋은 지인들과 감사하게도 따뜻한 연말을 보냈다. 한국에서 연말이 되면 가족, 가까운 지인, 친구들과 주로 외식을 하며 모임을 하지만 캐나다에서의 연말은 조금 달랐다. 서로의 집에 감사했던 가정을 초대해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문화가 처음에는 다소 번거롭게 느껴지고, 어떤 음식을 준비해야 하나 어렵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이런 문화가 즐겁다.

영국계 캐나다인인 친구의 영국식 가정식, 직접 베이킹한 케이크 등 정성 가득한 음식들

서구권 사람들은 알레르기나 음식에 제한이 많은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환경, 생활방식, 문화적인 인식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누군가를 초대할 때, 미리 음식에 제한이나 알레르기가 있는지 물어보는게 중요하다.

각자의 다양한 요리를 맛보고, 데코레이션을 구경하고 배우는 재미가 꽤나 좋았던 따뜻한 연말이었다.



그 밖에 교회에서 진행했던 기부행사, 연말에 떠났던 미국 포틀랜드 여행, 동네를 걷다 보면 구경할 수 있는 다채로운 크리스마스 장식들, 동네 예쁜 호숫가에서 장작불 피우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추억.. 등등.

밤이 길고 겨울이 긴 캐나다라지만 부지런히 나서면 즐거운 일들이 가득한 곳이라는 걸 깨달은 나의 캐나다살이 첫 번째 겨울이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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