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가을과 겨울

나의 첫 번째 가을과 겨울의 추억들

by 솔바람

나의 지난 몇 개월이 쏜살같이 지나간 느낌이다.

10월, 11월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어느새 12월도 절반이 넘게 흘러갔다. (이 글을 쓰던 시점에서..)

2024년도의 마지막 달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9월부터 낯선 환경에서 공부하며 삶에도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달려온 느낌이다.

그래도 무사히 한 학기를 잘 마무리하고, 나에게 3주간의 방학이 주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집 앞의 카페 Oso Negro

집 근처 좋아하는 카페에서 남편과 한낮에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고 글을 써볼 여유가 생겼다. 평일에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시골마을이라 제한된 노선의 버스를 타느라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과제하고 발표준비하고..

모처럼 마음에 짐이 없는 방학이 정말 꿀같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캐나다행을 준비할 때 아이엘츠 공부를 해보며 막막해서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마음을 여유롭게 먹고 차근차근 공부하는 것도 즐겁게 느껴진다. 이 나이에 이렇게 열심히 영어로 글을 쓰고, 생각하고, 말하고 새삼 이런 순간들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제 1월부터 4월까지 1학기만 더 어학과정을 하면 5월부터 본과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외국에서 공부를 해본다는 게 기대되고.. 본 전공을 시작하면 공식적인 파트타임 잡을 구할 수도 있어서 일을 해 볼 생각에 긴장도 되지만 기대감이 더 크다.


그간 주변에 좋은 이웃과 친구들도 생기고.. 나름의 일과도 생겼다.

버스에서 오가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진 친구, 아들의 베프 엄마와도 서툰 영어지만 마음을 나누게 되고( 역시 자식 키우는 엄마 마음은 국적을 불문하고 똑같다고 느낀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요가원이지만 점점 익숙해지는 사람들과 함께 땀 흘리며 뿌듯함을 느낀다.


우리 동네 넬슨에서 학교가 있는 캐슬가까지 버스로 40분 정도 걸린다. 시간대 별로 버스는 1대씩 있고 그 마저도 매 시간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버스를 놓치면 난감해진다.

작은 동네라 기사님이 매일 타는 승객의 이름도 기억하고 불러줄 만큼 정겹다.

하루는 컴컴한 새벽 헐레벌떡 버스를 타러 뛰어가는데 눈앞에 이미 서 있는 버스.. 기사님이 알아보고 감사하게도 기다려 주신다. 나를 보며 조금씩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문을 열어주는 장난까지 치시는 여유.. 덕분에 한바탕 웃고 버스도 무사히 탈 수 있었다.

넬슨의 다운타운 밤거리

매주 나가게 된 교회 ESL 프로그램에서 만난 Tressa라는 캐네디언 친구. 넬슨에는 몇몇 개의 교회가 있는데 유일하게 ESL을 운영하는 교회다. 서른 남짓 되었을까(이곳에서는 나이를 묻지 않으니) 넬슨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이다. 여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밴쿠버에서 대학 공부를 하다가 이곳이 좋아서 다시 고향에 와서 일을 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중학교, 고등학교가 1개뿐이라 우리 아들의 중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처음 ESL프로그램에 왔을 때, 볼리비아인 내 또래 친구가 함께 했는데 요즘은 바빠서 못 나와 매주 1시간씩 Tressa와 둘이 이야기를 나눈다. 딱히 무슨 수업이라기보다 그냥 편하게 수다 떠는 시간.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어려웠는데 꾸준히 만나다 보니 살면서 궁금한 것도 무엇이든 물어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 수도 있지만 무언가 나의 생각을 말하고 상대의 생각을 들으며 더 깊이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한다는 느낌에 서로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아직 서툰 영어지만 조금씩 스며들며 이런 관계를 맺는 것이 감사하고 소중한 날들이다. 덕분에 이곳에서 핼러윈을 보내는 문화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문화에 대해서도 이 친구를 통해 많이 배운다.

Tressa는 혼자 유튜브를 보며 김치찌개 끓이기를 시도할 정도로 한식을 좋아한다는 말에 우리 집에서 같이 나는 김치찌개 끓이는 방법을 알려주고, Tressa는 내게 쿠키 굽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키트가 아닌 밀가루와 버터를 직접 개량해서 만든 쇼트브레드 쿠키! 감격...


알록달록 가을이 지나고 이제는 겨울..

예쁘게 물든 가을이 지나가고 이제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이다.

그 사이, Holiday에 진심인 캐나다 사람들의 핼러윈과 크리스마스도 지나갔다. 특별한 날들을 하나씩 지나며 이곳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 어떤 마음으로 이 날들을 보내는지 함께 경험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베프 션과 함께 핼러윈 저녁 신나게 동네를 함께 돌았다. 아들은 큼직한 가방을, 션은 커다란 베개 커버를 챙겨 들고.. 베개 커버를 챙긴 모습을 보고 나는 웃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베개 커버에 사탕을 차곡차곡 한가득 모아 들고 다니고 있었다. 어떤 으스스한 분위기의 집은 마당에 쌓인 수북한 낙엽 속에 누군가 숨어있다가 아이들이 오면 놀라게 하기도 하고.. 재미있게 분장을 하고 각자의 집에서 마을을 도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인심 좋게 간식을 나누어 주며 따듯하게 맞아주었다. 아이도 어른도 즐거운 캐나다의 핼러윈 저녁이었다. 션의 엄마 역시 어린 시절 온 동네를 돌며 간식을 받은 추억이 있고..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간식을 나누며 아이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 주는 모습이 푸근하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잔뜩 받아온 사탕을 보니 1년은 족히 먹을 양이었다. 이걸 보니 드는 생각이 이 많은 사탕과 초콜릿을 다 먹으면 이도 썩고 몸에도 안 좋을 텐데 어쩌나 싶었는데, 어떤 부모는 미리 작은 선물을 준비해 두고 아이가 받아온 사탕과 교환하기도 한다고 한다. 아이의 즐거움도 지켜주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어른도 즐거운 할로윈 풍경


10월은 각자의 집에 핼러윈 장식을 구경하는 재미로.. 12월은 온 동네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하는 맛으로 가을과 겨울을 보냈다.


대부분의 집들이 핼러윈에 진심

우리 동네 넬슨에서는 핼러윈이 끝나고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우중충한 날씨와 밤이 긴 지루한 11월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Burger competition'이 열린다. 버거를 판매하지 않는 레스토랑에서도 자기만의 특별한 버거를 출시해서 1달간 판매하고 고객들이 투표에 참여해서 1등을 가린다고 한다. 어디 버거는 어떻더라 이야깃거리도 되고, 길고 심심한 밤 외식도 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가게가 있지만 평이 좋은 식당에서 버거를 먹어보았다. 고수가 들어간 생소한 맛의 버거였지만 꽤나 맛있었다.


고수가 들어간 특별한 맛의 버거


특별한 이벤트는 없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11월이 지나고 12월이 되니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맞이를 준비한다. 집집마다 집 안팎으로 장식이 점점 화려해진다.


진짜 나무는 당장 엄두가 안 나 소박한 트리로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 본 우리 집


어느 날, 마트 앞에 내 키보다 더 큰 크리스마스트리용 소나무 판매를 시작했다. 진짜 소나무를 마트에서 판매하기도 하지만 원하면 산에 가서 직접 베어와도 된다고 한다. 나에겐 모든 게 마냥 신기한 광경들이다.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아보니 상쾌한 소나무향이 가득하다. 나무는 통째로 큰 물통에 꽂아두면 온 집안에 소나무향이 은은하게 퍼진다고 한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서 저걸 어떻게 처리하나 궁금했는데 집 앞에 두면 수거해 가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 꼭 시도해 보고 싶은 소나무 향이 가득한 크리스마스트리. 상상만으로도 멋지다.


아들의 첫 밴드 콘서트


12월의 방학을 앞두고 아들의 학교에서 밴드 콘서트가 있다는 메일이 왔다.

아들의 학교는 한국의 학교와는 다른 다양한 활동들이 꽤 많다. 그중 신입생인 6학년은 1년간 무료로 악기도 대여해 주고, 주 2회씩 밴드 연습을 한다. 한국에서는 음악을 제일 싫어하는 시간으로 꼽았는데 이곳에 와서 악보도 잘 못 읽지만 밴드 공연을 한다니 신기했다. 비록 5분도 안 되는 짧은 연주였지만 아들의 얼굴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6학년 전체가 체육관에 모여 앉아 소박하게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무엇보다 보기 좋았다. 꼭 잘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런 경험들이 쌓여 아이에게 큰 밑거름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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