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아, 그러면
새삼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자주 듣던 노래가 느린 배속으로 흘러나온다.
원래 이렇게 느린 노래였던가.
가사가 다 들리고, 가사의 공백까지 들려서 그 속에 숨은 한숨까지도 들려온다.
누군가 그랬다.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는 아주아주 바쁘게 살아가라고.
그래서 나 아주 바쁘게 치열하게 숨이 차오를 때까지 살아왔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시계토끼마냥.
정말 시간과 분과 초를 나눠서 달렸어.
쓰러져 잠만 자기를 반복했어.
너를 잊기 위해서.
너희를 잊기 위해서.
그 꿈을 잊기 위해서.
나는 왜 잊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가.
잊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그런데 참 신기한 점은 말이야,
바쁘게 살면 내 감정을 유보할 수는 있어.
그런데 그게 잊히는 건 아니더라고.
그냥 거기에 그대로 멈춰있는 거야.
그리고 틈만 나면 나는 너를 생각해.
그리고 눈 떠있는 동안 정말 시간이 없어서 쓰러져 잠이 들면 말이야
꿈에 네가 나와.
그래서 바쁘게 살라고 말한 그 말은 틀렸어.
절대 바쁘게 살아서는 너를 잊을 수 없어.
그렇게 잊힐 정도의 마음이었으면
그랬으면 이렇게 내가 눈뜬 채로 시체가 된 기분은 아닐 거야.
나 언젠가 생각했었어.
내가 내 감정에 취했나 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그냥 내가 무언가를 이렇게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주인공 같은 삶에 취했나 보다.
그렇게 생각도 했었어.
그래. 내가 다 인정할게.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 꿈에 나와.
내가 나르시시스트고, 우울증이고, 내가 다 미친 거니까
그래. 그거 다 인정할 테니까 이제 그만 나 좀 놓아줘.
이제 나는 일을 더 늘릴 수도 없고
달리기도 이제 못해.
더는 숨이 차서 할 수가 없어.
너를 잊으려고 달리고, 또 달리고, 또 운동을 하고, 또 뛰쳐나가고, 또 일을 늘리고.
이제 나는 24시간 중에 남은 시간은 하나도 없어.
나는 이제 사람도 안 만나.
너한테 책임을 물으려는 것도 아니고,
내 감정에 대한 청구서를 들이미려는 생각도 없어.
그냥 나를 좀 놔줘.
내가 잡고 있는 거야?
나만 놓으면 된다고 생각해?
나는 네가 나를 아직 잡고 있다고 생각해.
이제 그만 돌아와.
나도 이제 거기 없을게.
나도 이제 기다리지 않을게.
유도하지 않을 거야. 그 어떤 분위기로도, 눈치로도.
그러니 너도 이제 오지 마.
우리 각자 살아가자.
우리 서로 행복을 빌어줬잖아.
이제 우리 행복해지자.
너도, 나도 사랑을 많이 하고, 주고, 하자.
아프지 말고, 잘 살자.
꼭 잘 자고, 이제 그만 울고
너도 이제 누군가에게 기대기도 하고.
그렇게 여운을 남기지 말자.
우리 이제 쉼표가 아니라, 마침표로 마무리하자.
이제 이게 끝인 거로 알자.
그렇게 하자.
잘 지냈으면 해. 정말 끝이야.
안녕,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