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여전히.
아마 죽을 때까지 너의 행복과 건강을 바랄 거다.
그것이 나의 사랑이 나의 이기심으로 끝나지 않는 결말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갖지 못할 것이라면
남도 가지지 못하게 없애버리는 이가 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해서 네가 나만큼 슬프진 않았으면 한다.
너는 이미 너무 아팠잖아. 나까지 보탤 생각은 없어.
단 한 줄의 절망도 앞으로 살 날에 없기를 바란다.
아니면 삶에 파도가 일더라도 그것을 같이 서핑으로 올라타줄, 너의 손을 잡아줄, 너를 양지로 이끌어줄 사람이 곁에 있기를 바란다.
꼭 양지만이 좋은 곳일까?
그럼 음지에 있는 건 나쁜 걸까?
그런데 양지에 있는 사람이 웃고 있다는 건 그래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겠거늘.
그러면 음지에 있는 사람이 울고 있다 하여 그 사람은 반드시 불행한 것이고 꼭 거기서 벗어나야만 하는 걸까.
그것은 얼마나 또 그 사람에게 노력을 강요하며 짓누를까.
그 사람은 노력을 안 했기에 거기에 머물게 된 것이었을까?
그 사람은 무슨 잘못을 해서 거기에 머물게 된 건 아니었을 거다.
교통사고든 새똥이든 자주 맞는 사람이 있었나.
그런 사람은 “그래. 이런 일도 있는 거지.” 하며 적당히 웃어넘기기에도 힘에 부칠 것 같다.
그 정도로 운이 계속 나빴으면 계속 웃는 게 어떨 땐 더 소름 끼치기도 한다.
극도의 회피 같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고통의 감정을 못 느끼는 사이코패스 같기도 하기 때문에.
차라리 극도의 절망가운데서는 처절한 우울이 맞는 것 같다.
누군가 내게 슬픈데 눈은 울고 입은 왜 웃고 있냐고 했던가.
그래서 뭐 어쩌라는거냐고?
나는, 나마저도 네게 어떻게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내 할말이다.
타인이 잠깐 듣고 생각한 방법들을 당사자가 모를리 없기에.
나는, 네게. "다 괜찮을 거예요. 힘을 내요. 울지 마요."
그런 요구사항을 늘어놓으려는 건 아니다.
당신의 우울을, 그동안의 슬픔을, 억울함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거기에 머물러 있는 당신의 표정이 너무 외로워 보여.
당신이 꼭 거기서 나오고 싶어 하는 것 같기에.
저번에도 말했지만, 당신이 손 잡아줄 누군가를 찾는 것 같기에.
나는 나라고 상처가 없는 것 아니고, 나 역시 너무 부족하고, 너에게 부끄러운 손이지만.
그저 당신이 거기서 나올 만큼만.
그 정도의 빛으로만 머무려 한 것뿐이다.
너무 뜨겁다고 이제 그늘이 필요하다.
이제 손에 땀이 찬다 하면, 잡았던 손을 당연히 놓아줄 것이다.
나는 너 하자는 대로 이끌려주는 것은 아니다.
너에게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질질 끌려다니기보단 네가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너보다 먼저 행동하는 것이고.
네가 먼저 말하면 그것을 기꺼이 들어주는 것뿐이다.
그러니 너도 내게 그만큼 나를 좋아하지 못하여 미안해하거나.
은인이라도 된다는 듯이 고마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너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면 나는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