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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Jun 28. 2019

내 몸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날

원래 바르게 사는 게 더 힘든 법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자고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씻으려고 샤워기를 틀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어렸을 적 눈앞에서 처음 불꽃놀이를 본 적이 있는데 하늘에서 크게 터지는 불꽃을 보며 온몸이 전율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근데 그 불꽃놀이가 어깨와 목에서 터졌다. 다른 의미의 전율이 온몸에 흘렀다.

'윽' 하고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낮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얼어붙고 말았다. 목과 어깨에 심하게,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담이 걸렸다. 차마 끄지 못한 샤워기를 맞으며 눈물인지 물인지 모를 것들이 얼굴로 흘러내렸다. 그렇게 나의 고통스러운 일주일이 시작됐다.

정말 상반신 마비라도 된 것 같았다. 나뭇가지에 묶여 매달린 허수아비가 이런 기분일까. 고개를 아주 정말 살짝만 돌려도 목과 어깨 그리고 등까지 전해지는 근육들의 비명에 너무나도 시끄러웠다.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잠을 잘못 잤나? 배게가 높나? 온갖 추측을 다해봐도 소용없었다. 이미 걸린 담으로 밥 조차 제대로 먹기 힘들었다. 점점 입맛을 잃어갔다. 배고픔도 이기는 고통이라니.

"너는 몸이 왜 그러냐. 하루도 안 아픈 날이 없네." 


오죽 내가 안쓰러웠는지 남편이 말한다. 결혼하고 우스갯소리로 서로 고쳐가며 살자고 했는데 유달리 나만 고쳐 쓸게 많았다. 


"반품 안됩니다. 고객님" 


장난스레 대답하지만 내 몸과 마음은 사실 장난칠 겨를도 없이 고통스럽다. 그렇게 겨우 이틀째다.

시간이 약이라길래 참아봤다. 약은 무슨, 진짜 약도 안 들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한의원을 찾았다. 


"일자목에 거북목이랑 만성 두통이네요."

 
안 좋은 건 다 가지고 있다. 


"이 정도 담이면 한 3-4번 와서 침 맞아야 돼요."


침을 맞으려고 침대에 올라가 눕는 것도 일이었다. 고장 난 로봇처럼 굳어서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나를 보고 모두 안타까워했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가 그랬어요."



몸이 이러니 정신도 같이 피폐해졌다. 하루 이틀이면 풀리던 담이었는데 근육 이완제를 먹어도, 침을 맞아도, 스트레칭을 해도 풀리지가 않으니 죽을 맛이었다. 이도 저도 안 되는 몸을 가지고 뭘 감히 할 생각을 못했다. 제대로 씻거나 머리를 감지 못하니 몸 단장도 못했다. 약속도 다 취소하고 집에만 있었다. 고개를 못 돌리니 눈알만 열심히 굴렸다. 맨소래담만 벌써 두 통째다. 온몸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과 특유의 싸한 냄새가 올라온다. 


문득 내가 그렇게 한심스러울 수가 없었다. 내 몸도 내가 어찌 못하는 나를 보며 안타까웠다. 세상에 이렇게 딱해 보일 수도 없었다. 내 인생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마당에 당연한 내 몸마저도 어찌 마음대로 못하니.
조금만 더 건강에 신경을 썼더라면, 틈틈이 스트레칭을 해줬더라면, 내 몸에 안부를 자주 물어봤더라면 이렇게 심하게 담에 걸리진 않았을 거다. 앉아서 글 쓴다는 애가 이런 식이면 장기전은 어려울 텐데. 업보다 업보.

오죽하면 근육들이 이렇게 반기를 들까. 이제 내 몸으로 살기 힘들다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거의 웬만한 보이콧 수준이었다. '이제 네 몸 못 해 먹겠다!'

괜한 짜증이 몰려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든다. 그러다가 순간 아차 싶다.  '맥주는 마셔도 되나..?' 맥주도 맘대로 못 마신다. 이게 바로 지옥이지 싶다.

그렇게 끔찍했던 일주일이 지났다. 그제야 양 옆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고 제법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그 뒤로 일어나면 스트레칭을 한다. 간간히 자세도 신경 쓰고 걸을 때도 올바른 자세로 걸으려고 한다. 아무렇게나 베고 잤던 베개도 높은 것 같으면 다른 걸로 베고 잤다.

사람은 이상하게 꼭 한 번 아파봐야 바뀐다. 평소에 신경 쓰고 몸 관리 좀 하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자세를 고친다. 이미 굽어버린 등과 목은 오히려 바른 자세가 더 불편하다. 바른 자세로 살아보려 해도 이렇게나 어렵다. 하루아침에 되는 게 어딨나 싶다.
그럼 그렇지. 어느샌가 또 목이 모니터 앞으로 있는 힘껏 마중 나와 있다.

역시 하루아침에 되는 건 해 뜨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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