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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드 말고 미드요

by 김트루

퇴근 후,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집에 들어서자마자 재빨리 외출복을 벗는다. 한 사람은 조명을 낮추고, 다른 한 사람은 퇴근길에 사 온 캔맥주를 봉지에서 꺼낸다. 겹치지 않는 동선 안에서 그 둘은 기계처럼 오차도 없이 빠르다. 그들의 최종 정착지는 거실 소파. 암묵적으로 정해진 소파 양 끝 자리에 나란히 앉아 한 손엔 리모컨을 한 손엔 캔맥주를 든다.


"튼다?"

"응, 틀어!"


'두둥.'

익숙한 bgm과 함께 익숙한 빨간색 로고가 화면에 뜬다. 이어서 맥주캔 따는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지고, 두 캔의 맥주가 서로 부딪힌다. 더 이상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화면에 시선고정이다.

무드 보다 미드가 급하다.


본래 강하게 자발적 집순이었던 본인과 알고 보니 집돌이였던 그이와는 제법 쿵짝이 잘 맞았다. 비록 집이라는 공동의 장소에서 각자 하는 일은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코로나를 기점으로 우리의 집콕 라이프는 나름 굉장한 특기사항으로 변했다. 뭔가 슬기로운 집콕을 꿈꾸다, 역주행보다 위험하다는 '정주행'에 시동을 걸어버렸다.


그 후, 우리의 일상은 신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지극히 무드보다는 미드 중심으로 흘러갔다.


퇴근 후, 저녁 준비를 끝내고 “틀까?”

식사 후, 소파에 앉아 “튼다?”

씻고 침대에 누워 “틀어?”


예전보다 서로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애정전선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부는 서로 마주 보는 게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게 비록 커다란 화면이 되었지만, 꽤 모범적인 취미라고 나름 자부하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이런 내 생각을 툭 던졌더니,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며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취미가 생긴 것에 오히려 감사하다고 한다. 이 사람, 내가 듣고 싶은 정답만 이야기한다.

그날따라 유난히 경쾌한 소리와 함께 딴 차가운 맥주가 오히려 온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기분을 느꼈달까.


정신없이 정주행 하며 달려온 지금, 총 시즌 12개인 미드의 마지막 시즌에 이르렀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끝이 보인다는 아쉬움만큼 정신없이 달려온 이 드라이브의 종착역이 궁금해 미치겠다. 오늘도 소파의 양 끝 자리에 앉아 리모컨이라는 차 키를 들고 거침없이 엑셀을 밟는다.

어쩌면 요즘 퇴근 후, 내가 집으로 가는 길이 설레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혹시 저에게 급한 볼 일이 있으시다면, 퇴근 후 저녁 시간에는 답장이 좀 늦을 수도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무드 말고 미드에 집중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오늘도 리모컨이라는 차 키를 쥐고, 다음 회차로 전속력 질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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