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학사모를 쓰고 부모님과 함께 졸업장을 들고 사진을 찍던 순간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 순간, 얼굴 가득 웃음이 넘쳤지만, 내 마음속은 복잡했다. 대학 생활의 끝을 알리는 졸업식이자 사회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입학식이 동시에 열린 셈이었으니까.
학부생을 마치고 가슴 한편에 학문에 대한 열정이 들끓었다.
"엄마아빠, 저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라는 말로 시작된 내 첫 반항, 그리고 그에 대한 부모님의 지지.
석사 과정까지 마친 후, 부모님께 석사 졸업장을 안겨드리니 엄마는 눈시울을 붉히셨다.
나는 "좋은 날에 왜 우세요?"라고 장난을 쳤지만, 그 울음에 담긴 의미는 지금에야 더 잘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믿었고 그 믿음이 결국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공부는 어려울 게 없었다. 원하는 만큼 이루어졌고, 원했던 만큼 헤쳐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학자금 대출을 갚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대학생 시절, 나는 수많은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하며 시간을 쪼개고, 장학금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힘겨운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보내며 내 미래를 위해 땀 흘렸다.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졸업식 내내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때 나는 단지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고, 무사히 졸업식을 마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거의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그때의 눈물이 뒤늦게 쏟아졌다. 학자금을 갚은 그날이, 내게 대학교 입학으로부터 정확히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 순식간에 통장잔고에 얼마 안 되는 5자리 숫자가 남은 걸 보고 뿌듯함과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이 날 감쌌다. 긴 시간을 버텨낸 끝에 비워진 자리에는 허무함이 스며들었지만, 동시에 그 모든 걸 견뎌낸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물론 학자금을 갚았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해 준 건, 바로 내 곁에서 끊임없이 응원해 준 사람들과 나 자신이었다. 그 길을 걸어오는 동안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10년 동안 그 모든 걸 견뎌낸 나에게는 이제 더 이상 두려운 게 없다.
이제 나는 또 다른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직접 끝을 마주했기에 비로소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용기를 얻은 셈이었다.
학자금이 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아파트 대출이라는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되었다. 학자금을 갚는 데 10년이 걸렸듯, 이 빚은 또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 모른다. 대출과 상환이 끝없이 반복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느새 익숙해진 듯,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나름의 여유를 찾고 있다. "끝났다!"라는 말은 또 당분간 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그날이 오면 또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말은 아파트 대출 말고 다른 대출이 있다는 거겠지?
그럼에도 어느새 익숙해진 듯,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나름의 여유를 찾고 있다. "끝났다!"라고 또 아마도 그 말은, 아파트 대출을 다 갚고 난 후에는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절대 대출을 권장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하고 또 내일을 버티게 한다면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중요한 건 너무 무겁게 짐처럼만 여기지 않고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지혜롭게 감당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내일을 살아갈 힘을 마련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