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종종 건강한 말다툼을 한다. '건강한'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식습관에 대한 거니까 그렇다고 하자. 그리고 그 건강한 말다툼은 냉장고 앞에서 일어난다. 무엇을 먹을지를 두고 말다툼을 나누는 게 아니다.
그놈의 8자리 숫자, 유통기한 때문이다.
남편은 유통기한을 굉장히 철저하게 지킨다. 기간이 딱 하루 지난 우유를 보면
'이게 대체 왜 아직 있는 건데?'라는 눈으로 날 쳐다본다.
반면에 나는 유통기한쯤이야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마치 도둑처럼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을 찾지 못하게 깊숙히 숨겨두고, 남편은 경찰처럼 하나하나 다 찾아낸다.
물론 몇 주 이상, 한 달 이상 지난 유통기한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건 '소비기한'이다. 유통기한은 판매자의 입장에서 정한 것이니까. 음식이 냉장고에 있었고 포장이 온전하다는 전제하에 나는 냉장고의 온도와 나의 후각, 나의 미각 그리고 약간의 나의 음식 솜씨를 믿는다.
나는 남편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오빠, 유통기한이랑 소비기한은 달라. 요리사에겐 재량이 있는 법이니까 그 재량을 믿고 맡겨봐."
남편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래, 대신 너무 오래된 건 제발 버려줘."
그의 항복은 조용하고도 찰졌다.
이쯤 되면 결혼이란 게 참 신기하다. 유통기한 하나로도 서로가 이렇게 다르다는 걸 매일 실감하면서도 결국 그걸 맞춰가며 살아가게 되는 거니까.
요즘엔 식재료를 적당히 사는 법을 터득하며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그 무엇도 넘기지 않아 보려 애쓴다. 한 달에 한 번 냉장고와 냉동실 털이는 기본이고 저번엔 처음으로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그냥 피부에 양보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중간 어디쯤에서 서로 타협하며 산다.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아도 결국, 한 냉장고를 함께 쓰는 사이다.
상할까 봐 걱정하기보다 어떻게든 더 오래 함께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너무 차가워지지 않도록, 너무 오래 묵지 않도록.
그렇게 매일의 식탁과 음식을 함께 나누며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유통기한 없이 조금씩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