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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아직도 회사일 확률은?

by 김트루

시계는 어느덧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후 3시 말고, 오전 3시였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빛나는 게 자신의 미래가 아니라 노트북 화면뿐이라는 사실이 더 암담하게 다가왔다.


그녀를 기다리던 남자친구는 오기가 생긴 듯했다. 이렇게 집에 안 보내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차로 데리러 온 그는 무려 5시간을 차 안에서 기다렸다. 그냥 집에 가라는 그녀의 미안함과 속상함이 뒤섞인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그녀를 새벽 세 시가 넘어서야 차에 태웠다.


그녀는 이 모든 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감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디자인 팀에게 모든 걸 떠넘기고, 나머지 타 부서 팀원들은 진작에 퇴근해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엉망진창으로 처리된 일의 희생으로 집에도 못 가고 이 시간에 사무실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분했다.


‘재택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대표의 한 마디에 모든 게 무너졌다.


“오고 가고 하는 시간보다 일단 끝내고 가는 게 낫지 않나?”


다음 단계는 체념이었다. 오후 10시가 넘어가자 그녀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애썼다.


‘그래, 내가 이 회사에 다니고 있는 한, 할 일은 다 하고 가는 게 맞지…’


그러다 세 번째 단계, 자조가 찾아왔다.

‘내가 이러려고 이 회사에 와서, 고작 얼마나 번다고 새벽 두 시가 다 되도록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하지?’


심지어 저녁 식사 지원도 없었다. 저녁을 먹고 오라는 말조차 없었고, 다들 각자 알아서 때우는 분위기였다. 밖에서 기다리던 남자친구가 챙겨둔 음식들은 이미 짜게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야, 오늘 이거 끝나면 삼겹살이든 뭐든 법카 말고 내가 쏜다.”


피곤에 절은 얼굴로도 농담을 던지는 팀원 덕에 분위기가 잠시 풀렸다. 그녀는 그제야 알았다. 회사라는 건 늘 사람을 소모시키지만, 끝내 버티게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란 걸.


새벽 세 시, 노트북 불빛보다 더 따뜻했던 건 차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한 사람의 불빛과 끝까지 함께 버텨준 팀원들이었다. 그녀는 같은 문서에 동시에 커서가 깜빡이는 걸 보며 묘한 위로를 받았다. 빨리 퇴근하자는 일념으로 한마음이 되어 일했고, 한목소리로 타 부서를 욕하며 버텼다.


사람만 보고 회사에 다니는 건 아니라지만, 결국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곁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퇴근길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게 회사 생활이라면 솔직히 치가 떨렸다. 그럼에도 그녀가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건, 이 모든 게 언젠가는 경험이 될 거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좋았던 건 추억이고, 나빴던 건 경험이라면, 그날은 분명 ‘나빴던’ 쪽에 속했다. 그래도 어디 가서 “새벽 세 시까지 야근했다”는 썰이라도 풀 수 있는 경험치는 하나 생긴 셈이었다.

물론 이런 일은 생애 단 한 번이면 족했다.


그녀는 속으로 다짐했다. 정말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더, 이런 불합리한 상황이 닥친다면,

그땐 진짜 그만둬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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