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결혼하고 신혼집에 들어와 내가 원하는 화이트톤으로 집안을 꾸며놓고 깔끔하게 미니멀라이프로 사는 게 꿈이었다. 주기적으로 물건을 버리고 식탁이나 탁상 위에는 인테리어용 화병 외에는 다른 물건들은 모조리 서랍 안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내가 원하는 방향과는 무관하게 아이가 생기고 집은 맥시멀라이프로 변하고 있었다. 없으면 불편하고 있으면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육아용품을 하나씩 들이니 집안이 꽉 찬다. 집안의 꽉 찬 물건과 어질러진 매트와 수북한 빨래, 어지럽혀진 싱크대를 보면 머리가 지끈 아프다.
이런 나의 성격 탓에 아이가 낮잠을 자면 그 틈을타 나는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싱크대를 정리하고 이유식을 만든다. 아이의 낮잠시간은 짧기에 잽싸게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러다 쉬는 것은커녕 번번이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의 낮잠시간을 틈타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무언가 마음이 먹먹하다. 집안에 갇혀 햄스터가 챗바퀴를 돌듯이 매일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의미 없는 굴레질이라고 느껴진다. 매번 집에서 하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나 자신을 일으키고 다독였지만 오늘은 마음에서 이건 아니라고 튕겨낸다. 화가 울컥 올라오고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 남편을 탓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그대로 하던 일을 멈추고 자다 깬 아이를 유모차에 실어 무작정 나왔다. 딱히 갈 곳이 없어 집 근처 카페에 왔다. 집에는 해야 할 일이 잔뜩 쌓여있지만 "아, 나도 몰라."를 외치며 아이스커피를 한잔 주문했다. 앉아 있다 보니 달달한 디저트도 먹고 싶어 디저트도 하나 주문했다. 점심시간의 카페에는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들,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들, 혼자서 노트북을 들고 나온 대학생들이 각자의 시간에 맞춰서 살고 있다. 한번 심호흡을 하고 카페 한편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다 보니 머리가 다시 가라앉는다. 칭얼거리려 시동을 거는 아이를 달래려 유모차를 앞으로 밀었다 뒤로 밀었다 한 손은 바쁘게 움직이지만 마음만은 점차 가라앉는다. 이렇게 한번 머리를 식히고 나니 집안일에 둘러싸여 지끈지끈하던 나의 마음이 작아 보인다. 사실 어지럽혀진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기는 무섭지만 비어진 커피잔과 함께 나의 묵직한 마음도 함께 비워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