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의 나는 사실 한 끼는 베이글에 아메리카노 한잔이면 충분히 한 끼 식사가 되었다. 밥보다는 파스타. 집밥보다는 외식을 선호했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언제부턴가 누군가 나를 위해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집밥'이 그리워졌다. 남편도 그렇지만 나 역시 항상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출퇴근을 하며 바쁘게 지냈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이 결혼해서 나와 살게 되었으니 둘 중 한 사람은 밥을 차려야 했다. 결혼초기에는 내가 남편보다 퇴근해서 귀가하는 시간이 더 빨랐기에 자연스레 내가 식사담당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퇴근 후에 식사를 차렸고 내가 식사를 차리지 않으면 그날은 배달의 날로 정해진다.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엄마가 했던 말이 공감되었다. '남이 차려주는 밥은 다 맛있어.'
정말 남이 차려주는 밥은 다 맛있다. 식탁에 올라오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 하나하나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알게 된 이후로는 그 밥상이 참 귀하게 느껴진다. 내가 집밥을 좋아하게 된 것과는 별개로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하루가 정신없이 돌아가 내 밥 한 끼 제대로 차려먹을 시간이 없게 되었다. 어찌어찌해서 식사를 차려 한입 크게 입을 벌려보는 순간 '으아아 앙' 하고 잠에서 깨서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그 밥이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맛도 제대로 느낄 새 없이 식사를 마치게 된다. 육아의 현장에서 반찬을 만들어 먹기란 내게 시간적인 사치다. 그 시간에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고 아이를 케어하고 전쟁터처럼 어질러진 집안살림들을 재정비하는데 더 열정을 쏟게 된다.
하지만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을 내가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절절히 실감하고 있다.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아침점심을 거를 때가 종종 생긴다. '어, 왜 이렇게 어지럽지?' 하고 머리가 핑 돌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 '아, 내가 오늘 밥을 안 먹었구나' 하고 정신이 차려진다. 이 와중에 배달음식은 신물이 나서 쌀을 씻어 밥솥에 밥을 안친 후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그때 냉장고 안에 반찬이 있으면 정말 반갑다. 그 반찬은 바로 시어머니표 반찬이다. 사실 결혼초부터 시어머니는 반찬을 종종 해다 주셨다. 결혼초에는 사실 그렇게 귀한지 몰랐던 그 시어머니표 반찬이 육아에 지친 내게 이제는 단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시어머니가 해다 주신 반찬을 모조리 꺼내어 김하나 더해 갓 지은 밥으로 식사를 차리면 왠지 모르는 울컥함이 올라온다. 그 반찬 안에는 정성 담은 마음과 시간이 녹아있기에 각기 다른 반찬들의 모양새가 나를 위로한다. 허공에다가 "하나님 잘 먹겠습니다.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를 외치고 한입 크게 입을 벌려 넣으면 그 맛이 참 달다.
밥에 반찬을 골고루 먹고 나면 배가 두둑해진다. 두둑해진 배를 두들기며 다시 이제 막 7개월 된 에너지 넘치는 우리 아들을 돌볼 힘이 생긴다. 반찬에는 육아에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힘이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