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나 이곳 강원도 인제에서나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이의 첫 낮잠시간,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마시는 시간이다. 서울에서는 가까운 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 오기도 하지만 강원도 인제의 집에서는 카페에 가려면 차를 가지고 15분은 나가야 하기 때문에 늘 집에서 내려마시는 걸 택한다. 사실 커피는 마실 때보다 커피를 내릴 때의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조금 더 맛있다. 아이가 잠에 든 걸 확인하면 커피 한잔을 탁상 위에 두고 디저트 될 만한 것을 하나 집어 마당에 가지고 나온다. 오디오가 꺼진듯한 조용한 마당에는 그간 들리지 않던 새소리도 귀에 온전히 들리고 바람에 조용히 흔들리고 있던 풀과 나무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잠히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제야 내 머리와 마음도 잠잠해지기 시작한다.
인제의 집 앞마당
사실 강원도 인제에 자주 오게 된 이유는 아이의 피부치료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피부는 여전히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고 있고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서 인지 아직은 완전히 피부가 치유되지는 않고 있다. 덤으로 내가 조용하고 또 높은 산에 둘러싸인 뻥 뚫린 강원도의 풍경과 공기와 마당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다. 아쉬운 마음과는 별개로 벌써 추석연휴가 하루가 남았다. 빈 이유식병이 쌓여가고 있는 걸 보니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너무 빠른 탓에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이다. 아이의 피부의 경과를 조금 더 지켜보기 위해서라도 추석이 지나고 조금 더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만 다시 남편은 출근을 해야 하고 나 역시 서울에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기에 다시 서울집에 돌아가야만 하는 여러 가지 여건들이 마음에 아쉽다.
아이가 먹고난 푸드케어 이유식 빈 병들
아쉬운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이곳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즐겨보기 위해 아이를 아이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맡기고 남편과 둘이서 강원도 인제부근에 있는 속초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이와 잠시 떨어져 남편과 단 둘이서 데이트한다는 생각에 신이 났지만 딱 속초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아이의 또래 정도 되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지나다니는 걸 보니 바로 우리 아이가 보고 싶어 진다. 덕분에 속초의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보고 싶어” 만 20번 외치면서 무언가 옆구리가 허전한 데이트를 한다. 허전하지만 우리의 오랜만인 데이트를 축복하는지 찾아간 속초의 식당과 카페의 사장님들 모두 마치 약속이나 하신 듯 너무나 친절하게 맞아주신다. 속초의 물회집은 살면서 먹은 물회와 회무침 중 단연 일등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어서 나중에 아이가 회를 먹을 수 있을 때 꼭 같이 오자고 약속한다. 다음으로 찾아간 카페에서는 사장님께서 자리도 좋은 자리로 마련해 주시고 예쁜 사진도 찍어주신다. 덕분에 남편과의 시간이 조금 더 행복해진다.
속초 영금물회
속초 카페 배타고
속초의 카페에서 남편과 커피를 마시며 미래를 약속해 보기로 했다. 아직은 마음뿐이지만 언젠가는 아이 셋을 낳고 어딘가에 마당이 있는 집을 짓고 그곳에서 아이들과 다복하게 살기를 말이다. 서울에서 육아할 때에는 무언가에 쫓기듯이 여유가 없어 아이하나도 충분히 벅차게 많은 느낌이지만 고요한 시골의 한적한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아이는 셋 정도 다복하게 낳아서 키워햐 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마도 시골에 내려오면 현실적인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넉넉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 가족 간의 공동육아가 크게 한몫하는듯하다. 서울에 가면 다시금 마음이 백 번 천 번 바뀔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아이 셋을 낳고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공기 좋은 곳에 집을 짓고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기를 약속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