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창조적 작업이다
19일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영국내셔널갤러리의 작품 초대전에 우리 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난 미술을 잘 모르지만, 몇 개의 전시회에 가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에 로뎅 전, 그리고 이후 아내와 함께 칸딘스키전을 가 봤는데, 불과 몇 번 되지는 않아도, 설명이 불가능한 어떤 충격이 있었다.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양정무 교수의 '난처한 미술이야기'의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특별판의 에필로그를 읽고,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 진짜가 전달해 주는 감동이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책을 통해 배우고, 인터넷을 통해 봐도, 물리적인 기법과 실제적인 감동, 그리고 전시되어 있는 공간과의 조화, 그리고 그것이 전시되기까지 걸쳐가는 시대적 이야기를 모르고는 작품의 실체를 제대로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간다고 해서 미술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이 쌓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정말 '나만의 지식'이 생기느냐 하는 부분이다. 예술은 창작자와 감상자의 교감이고, 어느 작가도 그 사실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감상자가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기를 바라는 것이 작품의 내면에 깃들어져 있는 것이고,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위대한 작가에 대한 진정한 경외다.
이 책에서 티치아노의 작품을 보면서, 티치아노가 왜 위대한 작가이고, 그것이 어떤 논쟁을 이끌어내고, 그 논쟁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어떤 문화적 영향력을 만들어 내었는지를 어렴풋이 생각하게 되었다. 붓터치와 색감, 그리고 그 색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그냥 그렇게 우연히 되었던 것은 아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맥락이 있다는 점에 깊은 감동과 감사를 하게 된다.
내 이야기로 돌아오게 된다. 나는 예술 작품에 대한 경외를 오랜 기간 가져왔다. 그래서 음반을 사고, 그래서 책을 사며, 그래서 작품을 직접 보기를 원한다. 그러한 경외심이 나에게도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생물에 대한 경외심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내 삶에 대한 예찬이다. 그래서 종자 개량의 원리를 공부하고 있다. 동물과 인간을 개량하는 것에는 늘 윤리적인 이유가 있어 꺼렸다. 그렇게 공부하게 된 식물은 오히려 더 많은 다양함과 즐거움을 주었다.
식물을 개량하는 원리는 생명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작업이다. 그것을 사람들이 쓰고 먹고 즐기면 그것은 예술의 창작과 감상과 다를 바 없다. 식물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수많은 기술들이 화가들의 색채와 윤곽의 논쟁과 다를 바 없다.
무엇이 더 나은 기술인지를 파악하는 과학은 미술의 평론에 가깝다. 나는 내 농장에 펼쳐진 다양성을 때로는 데이터로 때로는 직관으로 바라본다.
'디지털 농업'이라고 하는 유행어가 있다. 농업의 각 요소를 숫자화하여, 그것을 계산하고, 형질이나 요소의 상관관계를 밝혀서, 보다 효율적으로 실측치에 가까운 예측을 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실제 작업을 진행하는 비용을 감소할 수 있으므로, 위기관리와 효율 제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식물을 개량하는 데도 '디지털 육종'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마찬가지로 식물의 각 표현형이나 유전적 특성을 계량화하여 분석하고 예측하여 활용하자는 의미다. 그러나, 분자생물학과 분자유전학, 생물정보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이 체계가 기존의 전통적인 육종가의 직관에 의존한 식물개량보다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지에 대한 획기적인 사례는 부족하다.
유전자 한 개를 정밀하게 조절한다고 해서 정말 그러한 식물이 될지, 그것이 실내 실험에서는 가능했으나, 집단적으로 또는 후대에도 계속 그렇게 나타날 지도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식물 개량에는 여전히 육종가의 손길과 안목이 마무리를 하는 셈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런 부분에 대하여, 과학자들에게 더 명확한 질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꼭 이 기술이 필요한 이유를 작은 실례라도 가지고 와보라고. 왜 몇 가지 품종이 개발되어도 사람들이 그 품종을 실제 적극적으로 잘 활용하지 않느냐고.
물론, 이미 과학에 기반을 둔 몇 가지 성공 사례가 왜 없겠는가. 그런데 그것을 성공시키기 위하여도 결국 전통적인 육종가가 참여하고, 설명하기 힘든 많은 효과를 직관적으로 판단하여 결론짓는다. 다시 말해, 모든 유전자와 모든 유전적 현상, 환경적 현상을 다 수치화하여 예측하는 것은 엄청난 컴퓨팅 기술의 발전과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즉, AI 기술, 데이터 저장 기술, 에너지 소모 효율화 기술 없이는 아예 불가능한 개념일 수도 있다.
내가 죽기 전에는 여전히 직관에 의지한 창조력과 융합력이 중요한 능력일 것이다. 이 능력은 낮이나 밤이나 집중하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좋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실제로 하나하나 바라보고 찾는 경험. 이것이 결론이다.
식물을 개량하는 창조적 경험을 하려면, 반드시 들판과 자연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유전자를 찾으려면, 그것이 유래한 지역을 가봐야 한다. 유전자원은행에서 유전자를 가져오고 그 기록을 보아도, 그것이 실제 어떤 곳에서 어떻게 유래했는 지를 수집자의 부족한 기록만으로는 알 수가 없고, 있어도 부족한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모두 '진짜 경험'과 '진짜 지식'을 갖기를 원한다. 그것이 창조적 작업의 기본이고 기본이다. 그래서 미술관을 함께 갈 것이다. 난 양정무 교수가 쓴 이 책의 에필로그가 정말 마음에 든다.
'실제로 봐야 한다.'
그것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비록 지금은 알지 못하더라도, 위대한 작품은 가슴에 뜨거움을 남긴다. 그 뜨거움에 화상을 입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삶을 살 자격이 있다.
나는 7년 동안, 식량과 쌀, 그리고 종자에 대한 여행을 계획하였다. 현장을 가서 보고 그 문제를 실제로 공부하고 그 내용을 남길 것이다. 그 여행에 함께 하는 몇 분이 있지만, 내 여행은 나의 시각일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는 재원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았다. 덜 먹고 덜 쓰면 될 수 있고, 그리고 친구가 생기면 나눠 쓰면 되고.
마지막으로 여기에 한 문장을 남겨 놓고 싶다. 나에게 왜 쌀을 개량하는 육종가가 될 것이냐고 묻길래, 이렇게 답을 한 적이 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누군가 밥을 먹다가, 이렇게 좋은 쌀을 만들어 준 사람에게 감사하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알게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