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추억의 공간
배가 여럿 들어와서 가족끼리 나눠 먹었다.
배는 과거에 최고로 귀한 과일 중 하나. 그러나, 너무 잘 상한다. 조금만 손상이 가도 가격이 안 쳐지니, 농부들 속 태우는 과일이었다.
돌아가신 큰외삼촌은 냉동고에서 막 꺼낸 얼린 배를 좋아하셨다. 얼린 배는 꺼내면 자르기가 힘드니, 미리 잘라 넣는 게 요령이다. 꺼내어 녹이지 말고 바로 먹어야 한다.
질감과 당도가 확 달라진다.
우리 집은 부유하지 못했다. 그런데 종종 큰외삼촌이 오셔서, 내가 필기한 노트를 가져오라거나, 학교에서 배움직한 퀴즈를 내시곤 하였다. 핑계를 만들어 용돈을 주셨고, 그렇게 당신의 공부 비법을 간단히 알려 주셨다.
난 큰외삼촌이 대단한 분인지는 몰랐으나, 지나치게 강직하다는 말을 듣는 유명한 회계사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큰외삼촌은 바람같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분이어서, 대화다운 것도 없었다. 어머니를 포함해 모두들 쩔쩔매는 분이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곤 더 뵙기 어려웠다. 외삼촌은 몇 년 전 돌아가시기 직전에 병원에서 사람이 찾지 않는 병상에 계셨던 것만 기억한다.
그러나, 배를 보자 외삼촌이 떠올랐다. 일부러 배를 얼려 달라고 외할머니께 부탁하는 큰외삼촌의 목소리가 들려, 가족들에게 배를 얼려 먹자 했다.
아쉽게도 배를 얼리는 동안, 기다리지 못하는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셨지만, 규원이, 아내와 얼린 배가 얼마나 달고 시원한 지, 커피를 함께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바람처럼 그리고 그림자처럼 살다 간다는데, 남은 것은 물건들에 스며든 이야기뿐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