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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중현 Dec 31. 2023

스포츠와 인생

마라톤과 복싱


우리 집 딸아이가 대학교 4학년이 되는 시점에서, 다시 집으로 합류하기로 했다. 자식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더 귀해진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인생과 닮은 두 개의 스포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하는 스포츠는 무엇일까?"


요즘의 친구들에게 생소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스포츠는 인생이다'이 얼마나 진부한 비유인가?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었다. 


"올림픽이 스포츠 제전의 꽃이라면, 사람들이 머릿속에 가장 많이 떠올리는 종목이 마라톤이지. 이러한 모티브에서 영화도 참 많이 나왔지."


영화 '불의 전차'는 아마 이런 영화 중에서도 가장 대단한 영화일 것이다. 반젤리스의 음악과 함께. 난 왜 마라톤이 인생을 담는 스포츠인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eh03HfGEyvU


"대부분 운동 종목과 마라톤이 크게 다른 점이 있어. 난 그게 인생과 연관이 있다고 봐. " 딸아이는 별로 생각을 많이 해 보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마라톤은 1등에게만 환호하지 않아. 가장 마지막 들어온 사람에게도 환호한단다. 마라톤의 기원과 핵심은 1등으로 달린다가 아니라 완주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이고, 인생의 목표는 바로 완주함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 선수들 중에 선발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인데, 가장 뒤에 달리는 사람은 필히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야."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지. 수많은 사람들이 중도 포기했을 거야. 그것을 보고 달렸겠지. 1등은 주변의 포기자들을 거의 보지 않고 달렸을 거야. 그러나, 가장 마지막 들어온 사람은 그 포기자들을 보면서 생기는 수많은 번뇌를 다 이기고 끝까지 달려 들어온 것이지."


말을 이어나갔다. 


"스포츠는 몸으로만 하는 경기가 아니야. 몸과 정신의 것이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완주한 사람을 보고 감동하지. 마라톤은 얼마 전까지도 올림픽의 가장 마지막 종목이며, 심지어 올림픽 폐회식이 끝나고도 마라톤 경기를 종료하지 않은 적도 있어. 완주하는 선수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지."


비로소, 딸아이가 진심으로 공감하는 표정이 읽혔다. 말로 할 수 없는 그 고통과 외로움, 달리는 중에 슬슬 땅거미가 지고, 사람들이 제 할 일로 돌아가는 중에도, 종종 들려오는 작은 박수소리에 끝까지 완주하는 선수와 교감하는 듯했다. 


"그리고 한 가지 스포츠가 더 있어. 그건 복싱이지. 복싱은 때려서 사람을 쓰러뜨리는 경기가 아니라, 상대의 견제와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는 자가 승리하는 경기이거든."


이 이야기를 딸아이에게 처음 한 것이 아니라, 나도 들은 바고, 수업 시간에 다른 학생들에게도 종종 했던 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더 이야기를 나가 보았다. 


"복싱의 두 선수는 제한된 공간에서 상대를 힘들게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어. 사실 이 두 선수는 원수도 아니지. 상대가 시련을 견디고 승리하는 영광을 맛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정의 동지인 셈이야. 그리고 먼저 지친 선수가 쓰러지겠지."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봐. 한쪽이 쓰러지면, 쓰러뜨린 선수 쪽에서 열광하고 환호할 거야. 쓰러진 선수 편은 얼마나 속이 쓰리고 안타까울까. 그런데, 비로소 더 큰 환호가 나오는 거야. 바로 그 선수가 다시 일어나 싸울 투지를 보여줄 때야. 이게 인생이거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사람들을 울리는 거야."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타인에게 끊임없이 주입받는 생각들이 있다. 이겨야 한다는 것, 그리고 1등 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인생을 담은 이 두 종목, 마라톤과 복싱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버티는 것, 다시 일어서는 것, 그리고 끝까지 가는 것. 


덧붙여,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서도 달리기와 복싱이 있었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 가장 인간적인 순간들을 확인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종목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말했다. 


한 해를 마치는 분기점에서, 많은 시련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삶에서의 독립은 곧 '시련'을 의미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련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나도 되뇌어본다. 


포기하지 않는 것, 끝까지 가는 것, 주변의 고통을 보게 되더라도, 인생의 참 의미를 내 삶에서 구현하는 것. 그렇게 딱 한 번 살다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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