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가 삶인가
오늘 여기 연구실에 유학 중인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중에서 생각나는 것이 있어 메모한다.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삶을 선택하는 것'인가 하는 것인가.
누구나 유명 연예인의 삶에 대해 궁금하고, 실제로 그/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느 정도 사생활이 노출되어도 감수하고 살게 된다. 왜냐하면, 연예인은 '그런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종종,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왈가왈부가 있지만, 실제로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희귀함을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 스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상당히 '직업적'인 것 같지만, 사실 그냥 그렇게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것은 직업관의 일종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직업=삶'과 같이 판단되어 그 차이가 모호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나는 편의상, 그런 선택을 '삶을 선택'한 것으로 분별하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과학자가 되는 것은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자의 세상은 '수월성'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실력과 우수한 성취로서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정상'인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사무실에서 퇴근 시간에 집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며, 자면서도 아이디어를 적기 위해 일어나 끄적거리는 것이 대단한 것도 아닌 사람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집단은 연예인, 스포츠맨, 기업가, 종교인, 그리고 과학자가 있다. 그들은 세상의 가치관 변화에 따라 그 대우가 달라지긴 해도, 결국 무한경쟁의 수월성 집단임은 분명하다. 더욱이 그 경쟁도 클래스가 있다. 메이저리그가 있고 마이너리그가 있다. 과학자로 치면, 국제적 수준의 과학자가 될 수도 있고, 국가적 수준의 과학자가 될 수도 있다.
종종 국제적 과학자가 자기 고향에서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과학자 집단도 사람들 사는 세상이고, 과학자도 생업이 있어야 하기에 정치적인 상황에 처하여 애를 먹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적 업적을 만들어 내는 과학자 본연의 작업은 논문, 발명과 발견의 형태로 나타나는 데, 그것이 반드시 상관이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많은 과학자가 그렇게 '살아간다'.
특히 논문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 과학기술적 연구는 '국제적 평가'를 받는 거의 유일한 시스템이다. 박사학위를 받으면 죽어도 박사다. 어느 한 곳에서 받으면 세계 어디를 가도 박사다. 박사란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고 그것을 세상에 공표하는 자'다. 그래서, 책임이 큰 것이고, 법률에서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는 그들의 것이다. 종종 박사학위가 박탈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연구의 질적 수준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연구의 과정이 불량하다고 판정되었기 때문이다. 논문이 비윤리적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럼 논문은 언제 만들어지는가. 내가 별난 사람이 아니라면, 결국 논문이 출퇴근 시간으로 내 삶이 통제되고,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교수들이나 연구책임자가 직접 논문을 전부 쓰지 못하고 여러 사람과 협업하는 것은 연구 분야가 제한되어 그런 경우도 있지만, 논문이 완성되기 위한 수많은 작업이 분할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과학자들이 말한다. '나에게 삼일만 준다면 논문 한 편을 쓸 텐데. 이번 추석 연휴에 혼자 있고 싶어. 논문을 한 편 쓸 거야.'. 그렇다. 그 잠시 며칠의 휴식이 없어서 논문을 못쓰는 과학자도 많다. 그런 삶이 과학자의 삶이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늘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과학자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지, 엉뚱한 곳에서 누군가와 몇 시간을 떠들고 있거나, 혼자 멍청하게 있거나, 되지도 않는 곳에 가서 술만 먹고 있기도 한다(많은 고뇌의 증거다). 그리고, 취미라는 것도 읽고 쓰고 말하고 듣고, 그리고 최소한의 교양을 짬을 내어 챙기면서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이 과학자다. 그런데 훌륭한 과학자는 그 모든 것들에서 회귀하는 어떤 맥락을 찾고 결국 자기 삶을 지배하는 그 실마리를 놓지 않고 지속한다. 우리는 그것을 '몰입'이라고 한다.
과학자가 몰입하는 환경을 만들어주자고 한다. 그런데, 정작 과학자가 멍청하게 딴짓한다고 생각하고 술이나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세상이라면, 과학자는 몰입할 수 없다. 그까짓 돈계산, 영수증 챙기기, 학생들 상담하기를 의무화하거나 떠넘기면서, 왜 징징대냐고 하면 할 말 없다. 시간을 끊어 먹히고 그리고 생각을 끊어 먹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과학자들은 그저 '직업인'이다.
그렇게 과학자 집단이 직업인의 집단이 되고,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집단이 되면, 행정가나 정치가, 다른 기업인의 심부름군이 되기 십상이다. 숙제 대신해 주고, 가서 좋은 말 해 주고 그러다가 시간 쓰기 일쑤다. 과거 왕들은 옆에 천재와 광대들을 부리면서 권력을 과시했다.
그런데, 개인이 이런 세상에서 자신의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방법이 있다. 개인이 독립적으로 성취하면 된다. 사회는 그러한 장치를 만들어줬다. 그들이 천재와 광대들이다. 현대에 와서 그들은 과학자가 되고, 문학가가 되고, 예술가가 되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어떤 세상인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그렇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