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를 봐야 아는 이야기 - 쌀 밖에 안되고, 쌀을 다르게 봐서 안되고.
유지와 밀가루, 설탕 등 수입 기본 식소재의 이야기는 쌀이나 다른 원료곡 등에도 모두 적용되지 않을까. 요즘 드는 생각은 품종이 중요한 것일까, 아니면 수확 후 관리가 더 중요한 것일까. 물론, 다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곡물 산업의 발전 양상을 보자면, 서양은 수확 후 과정이 먼저 발전하였고, 우리는 품종과 재배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일본은 어떨까?
일본은 품종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쌀을 보면 수확 후 관리가 매우 높은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러니까, 품종을 더 강조하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품종의 발전이 곧바로 소비자가 대응하는 품질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책도 편하고 농민도 편하고 소비자도 편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수확 후 관리 체계의 발전이 더디다. 품종을 아무리 개발해도 그것을 소비자가 직관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배와 재배 이후의 과정이 블랙박스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잘 알지 못한다.
일본의 식량 작물 육종회사들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 중에는 이러한 상황도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품종만 잘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재배와 그 이후의 체계가 잘 정비되어 있는 정부 또는 지방정부의 우위를 개인 기업들이 이겨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을 어떻게 영세 기업들이 이겨낼 것인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역설적으로 어느 대기업이 재배와 그 이후 체계 표준화를 정부 이상으로 해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오히려 이 부분이 주도하여 민간의 품종 개발을 체계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새어나갔다. 그런데, 사실 요즘 가공용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에 대한 별도 품종을 논하는데, 그것에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용도별로 품종을 개발한다. 용도별로 소재를 개발한 다 와 같은 이야기는 전체 산업 프로세스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고, 사실 품종이 너무 다양하면, 오히려 이후의 산업 프로세스가 너무 복잡하여 고품질의 소재 생산 실현이 어렵다.
결국, 가장 우수한 품종 몇 개가 우점하게 되고, 그것이 소재용으로도 쓰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배와 재배 이후의 체계에서, 각 가공 단계별로 만들어지는 소재를 표준화하여 활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어떤 특정 소재용 가공용 품종을 개발하게 되면, 그것이 실제 소비자나 소재 활용 기업이 가져갈 만한 수준까지 이르는 어느 정도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 하므로, 여기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단순한 파이프라인이 필요하게 되고, 그것은 결국 혼합잡곡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성공한 것이 흑미와 찰벼 정도다.
내가 대학 시절 연구실에 있을 때에도 다양한 기능성 품종이 나왔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의 벼 육종 기업의 책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현재 유일한 민간기업과도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늘 남는 질문이었다. 일본도 대만도 기능성 품종, 소재형 품종, 가공용 품종이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모두 찰벼와 흑미, 적미 정도다. 그것도 전부 잡곡용이다.
그래서 돌고 돌아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또 새로운 시도를 한다. 칼라쌀, 항암쌀, 칼슘쌀, 무슨 쌀... 그런데 그것이 의미 있는 성공을 했는가? 진흥청도 아밀로스 함량이 높은 쌀, 쌀가루용 쌀 등을 시도했지만 결국 의미 있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가? 요즘은 김밥용 쌀, 비빔밥용 쌀...(사실 이것도 아마 어떤 자리에서 내가 먼저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는 하다.)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게 따로 있는가? 아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쌀을 재배 차원에서 먼저 대량 생산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수확 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단계별로 표준화하여 활용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우리나라는 농업 시장이 폐쇄적이다. 생산도 소비도 유통도 가공도, 심지어 R&D도, 그것에 따른 금융도, 무역도. 그래서, 어느 농산물도 가공이나 수확 후 처리에서 의미 있는 산업이 되지 못하는 이유의 근본에는 이 영세성과 폐쇄성에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기업의 성장을 지체시키는 것들이 있다. 공공기관들의 진취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례와 형식, 서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효율과 합리를 중시하므로, 그것이 가장 큰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규모화가 우선인데, 그게 안 되는 것이다.
그나마 규모화가 가능한 것은 쌀 밖에 없다. 아래 밀가루나 설탕, 유지 등의 이야기가 외국 수입산 소재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국내 자체 생산이 가능한 쌀 이야기를 풀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