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는 잡종화 과정을 거쳐서 더 좋은 종자가 됩니다
* 이 글을 읽으면서 이해가 잘 안 가시는 분들은 지난 브런치 글, '새로운 벼를 만드는 그 시작' 편 등의 글들을 보시면 됩니다.
드디어 교배된 식물의 종자들이 영글었습니다. 저는 흡사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신라 왕족들의 옥 귀걸이 모양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 종자들 중에는 옥 귀걸이보다 더 귀한 가치를 가진 종자들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 종자들은 다르게 생겼지만, 사실은 다 유전자형이 같습니다. 한쪽은 엄마 식물에서, 다른 한쪽은 아빠 식물에서 왔는데, 그 유전자들이 모두 같기 때문이죠. 굳이 사람으로 말하면, 꼭 같지는 않더라도 '다란성 쌍둥이들'일까요?
이렇게 두 개의 다른 식물을 교배하여 얻은 종자를 '교배종자'라고 부르며, 품종 개발을 하는 육종가들은 이런 종자를 'F1 종자'라고 부릅니다.
'F1'은 자동차 경주의 한 종류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의 F는 자식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약자입니다. 'F1'이란 'Filial 1'의 약어인 셈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여러 개의 F1 종자 중에서 하나를 확대해 본 것입니다. 확대해 보니 꼭 화석 같습니다. 벼 종자 같이 안 보이죠?
왼쪽 위에 하얀 부분이 '배'입니다. 나중에 식물로 성장하는 부분이죠. 다른 부분은 '배유'로 배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저장한 부분입니다.
F1 종자의 영을 벗겨낸 것으로 이 그림은 현미 상태인데, 그래서 약한 갈색을 띠고 있습니다. 교배를 하기 위해서 잘라낸 부분 때문에 겉에 드러난 부분은 날씬해졌습니다.
교배된 종자들은 성숙하는 동안, 배유가 바깥에 노출되어 성장하기 때문에, 더 가늘고 날씬하며, 속껍질이 단단해지는 경향이 생깁니다. 일반적인 벼 이삭과 교배된 이삭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꽃가루를 제거하기 위하여 하는 작업을 '제웅'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웅되어 교배를 한 이삭의 종자를 얻기 위하여 봉투도 씌워 놓았지요.
보통 그런 이삭은 일반적으로 성숙되는 이삭보다 작고 종자도 더 작게 생깁니다.
오른쪽 그림에서, 왼쪽은 일반적인 이삭, 오른쪽은 교배된 이삭입니다. 같은 식물에서 나왔다고 생각할 수 있겠나요?
보통 벼의 F1을 만드는 과정에서 보는 이삭도 좋지만, 흑미가 들어있는 이삭은 더 특이합니다.
엄마 벼가 흑미이고, 아빠 벼는 보통 색의 벼인데, 이것을 교배하면, 다음 사진과 같은 교배 종자들을 보게 됩니다.
교배종자의 색은 엄마 벼의 종자색을 따릅니다. 벼 종자의 종피는 엄마 종자의 씨방 세포가 그대로 발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F1의 종자를 심어서 길러 얻은 F2 종자를 다시 심으면, 손자 손녀들 종자는 흑미와 보통 색의 종자가 뒤죽박죽 나오게 됩니다.
새로운 벼를 만들기 위하여, 잡종을 만드는 작업은 아주 오래된, 품종 개발자들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벼는 가능한 자기의 꽃가루를 이용하여 수정되는 식물입니다. 논에 물이 차 있으니 곤충을 이용한 매개가 일반적이지도 않은 데다가, 다른 식물들이 쉽게 접근하기도 힘듭니다. 더욱이 물도 많고 영양도 많으니 굳이 다른 식물에게서 꽃가루를 받아 새로운 유전자에 의한 변이를 활용할 이유가 없겠지요. 벼는 그런 면에서 참 현명합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비롯한 다양한 위기, 그리고 사람들의 취향의 다양성 등 때문에, 육종가들은 여러 가지 세계 곳곳에서 적응한 벼들을 교잡하고, 그것들 중에서 새로운 좋은 것들을 취하여 활용하고자 합니다. 육종가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1ha당 2톤도 안 되는 쌀을 생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지구 상 인류를 먹여 살리는데 1ha당 4.5톤이 넘는 평균 수량을 유지하고 있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기술이 바로 '교잡육종'입니다.
특히 중국은 장립종 인디카벼가 교잡이 될 때 잡종강세가 경제성 있는 수준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Yuan Longping 박사가 개발한 '잡종벼(hybrid rice)' 체계를 적극 활용하여 식량안보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 최초의 국가과학자이며, 들은 바로는 연구 예산을 본인이 결정할 정도의 신뢰를 얻으셨던 분입니다. Yuan 박사의 잡종벼가 없었다면, 중국의 빈곤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https://www.the-scientist.com/news-opinion/hybrid-rice-developer-yuan-longping-dies-at-90-68809
잡종벼를 품종으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많은 벼를 일일이 제웅을 하고 교잡을 해야 한다는 것이 큰 어려움이죠. 제웅을 하는 문제는 '웅성불임'이라는 형질을 찾아 활용하는 것으로 해결하였습니다. 웅성불임 식물체는 꽃가루를 만들지 못하지만, 다른 꽃의 꽃가루를 받을 수 있죠.
https://www.frontiersin.org/articles/10.3389/fpls.2021.629314/full
그런데, 웅성불임체를 만든다 하더라도 교잡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보통은 웅성불임 식물과 아빠 역할을 할 식물을 교대로 심은 다음, 양쪽에서 줄을 잡고 치고 다니거나, 헬기의 양력으로 꽃가루를 비산 시키거나 하는 방법을 쓴다고 합니다.
최근에 와서는, 야생벼에서 꽃가루를 받아야 하는 주두의 길이를 길게 하는 유전자를 발굴하고, 그 유전자를 웅성불임 식물체에 도입하여, 위의 두 가지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하려는 노력도 했습니다.
https://thericejournal.springeropen.com/articles/10.1186/s12284-021-00521-9
꽃가루를 받아들이는 '주두(stigma)'의 길이가 보통 1.3mm, '화주(style)'의 길이가 1mm인데, 합치면 2.3mm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 유전자를 도입한 식물체는 둘이 합쳐서 3.8mm가 된다니, 두 배 정도 길어져서 영화의 바깥쪽으로 노출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른 꽃의 꽃가루를 많이 받을 수 있겠지요?
신기하게도, 이 유전자가 도입되어도 수술의 길이는 변함이 없고 암술의 길이만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전자를 도입하게 되면, 혹시라도 암술이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외부의 건조나 고온 등에 시달려서 위험해지지 않을까요? 저자들은 논문에서 그런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포장 실험을 해 보니, 그게 그렇게 큰 변수가 아니라고 하네요. 그러나, 기후변화가 계속되어 타식성이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을 수 있으니 더 지켜봐야죠.
이나가키 히데히로라는 일본의 잡초학자는 훌륭한 식물 관련 저술가입니다.
그의 많은 책 중 '전략가, 잡초'는 어제 단숨에 읽었네요. 식물과 진화, 세상에 관심이 많은 분들 뿐만 아니라, 식물에게서 얻는 지혜를 아주 다양한 사례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이 책의 에필로그를 정말 강추합니다.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더군요.
이 책에서 식물들이 꽃가루를 자기의 것을 선호하느냐, 다른 식물의 것을 선호하는 것이 식물의 생존과 진화에 어떤 역할을 했느냐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식물 자신의 삶이 평온하고 순탄하면, 상류층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에 보수적인 대응을 하듯이, 꽃가루도 자기 자신의 꽃가루를 활용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아예 다른 꽃가루가 들어오면 '잡종장벽'이라는 메커니즘이 발동하여 잡종을 제거하는 '순혈주의'를 추구하기도 합니다. 벼는 보통 자연상에서 3% 정도의 잡종화가 되는데, 그것도 넓은 경지 면적에 단일 품종만 있다면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잡종화를 유도하기 위하여, 식물체의 주두가 밖으로 나오게 한 벼를 생각해 보지요. 어떻게 보면 굳이 그렇게 살 필요가 없는 좋은 환경에서 잡종이 되라고 하는 인간의 요구에 따라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논에 들어가기 싫어하기 때문에, 종자를 직접 땅에 파종하는 '직파재배' 등을 선호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벼들이 종종 불량한 환경에서 탈립성 등이 생겨난 '잡초벼'가 생겨나는데, 이것들은 종자를 일찍 성숙시켜 흩어버리기 때문에 아주 골치입니다.
잡초벼들의 생리는 최근에 와서야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저런 잡초벼들은 다른 벼와 교잡도 더 잘 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잡종벼를 만드는 것은 생산성을 높이자는 것이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기계를 활용한 직파재배를 선호하게 됩니다. 직파 시스템에서 잡종성이 좋은 잡초벼가 많이 생기니, 외부의 꽃가루를 잘 받아들이는 벼라면, 이런 잡초벼와 더 교잡이 잘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종자관리에서 어려움을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잡초벼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하고 있으니, 이런 연구들이 잘 취합되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요? 다만, 현재까지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 단립종은 잡종강세 현상이 경제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나타나지 않아서, 잡종벼는 주로 인디카에서만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자는 그런 말을 합니다. "아니, 쌀이 많이 남는다는데, 무슨 잡종벼를, 아니 벼는 자꾸 개발해요?"
물론 지금의 벼 품종들을 보고 있자면, 짧은 시일 동안은 괜찮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논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지금의 쌀은 이미 의무수입물량을 고려하면, 남는 수준도 아닙니다.
만약의 경우에 기후변화가 세계 식량 상황을 불안하게 하면, 갑작스럽게 생산면적을 늘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만, 지금 우리 상황을 보면, 절대농지조차 다른 용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논이 줄어드니 저수 능력도 떨어져서, 특히 도시 근교는 열섬현상이 확장되어, 고온 기간이 더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변화 대비 품종, 탄소저감 재배법 개발(아래 FAO 링크를 보세요. 우리나라는 메탄 발생 악당 국가입니다)이 특히 필요한데, 이와 함께 단위면적당 수량성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농가 경영적 관점이 아닌, 전체 식량 경제적 관점에서 보아도 그런 필요가 생기고 있다고 봅니다.
http://www.fao.org/faostat/en/#data/GR/visualize
따라서, 편차가 심한 기온과 강우량, 노동력 감소를 위한 로봇 활용 농법의 개발, 세계 정책과 경제 환경 변화 등에 대비하는 벼 품종들은 꾸준히 개발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나라 육종가들은 꾸준히 교배하고, 그것을 심고 수확하는 일을 반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