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계란밥과 외할아버지

아침 기사를 보다가 외할아버지의 낡은 사진을 보게 된다

by 진중현


아래 간장계란밥 인기가 있다는 기사를 보는데, 갑자기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졌다.


https://news.v.daum.net/v/20210921094600983


내가 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텃밭에서 외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샐비어, 분꽃, 나팔꽃, 맨드라미를 비롯한 화초와 여러 가지 다양한 채소들을 기르시는 외할아버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어머니는 형제가 많았지만, 내가 유일한 외손인 데다가 비교적 일찍 보신 손자라서 많이 이뻐해 주셨다. 비록 집은 어려웠지만, 늘 격려와 칭찬, 그리고 좋은 말씀을 자주 해 주셨다.


어릴 적 이름이 '창완'이었다.


"창완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냐?"


"..."


"과학자 해라. 인민군이 쳐내려 와서 사람들을 잡아가도, 과학자는 모셔가더라."


갖은 전쟁과 고초를 겪으신 외할아버지는 과학자가 의사들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고른 이익을 주는 사람들이라며 하신 말씀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런 까닭인지 나는 사람에게 이로운 식물을 연구하는 농학자가 되었다. 그렇게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작물 연구를 마지막 순간까지 하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그때의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리라.


지금은 벼를 가장 중요하게 연구하는 식물로 삼고 있지만, 외할아버지는 다양한 식물을 가꾸셨기 때문에 다른 식물에 더 관심이 많았다. 분꽃의 씨를 빻아 분도 만드시고, 알로에를 잘라 내 얼굴에 발라 주셨다. 가끔 먹었던 알로에 '사라다'도 좋았다.


아보레센스, 사포나리아, 베라 - 세 가지 알로에의 특징과 기르는 재배법을 외웠더니, 할아버지가 신기하게 쳐다보고 칭찬을 해 주셨다. 아마도 그때 이미 '품종'과 '다양성'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다른 부부처럼 종종 다투셨다. 그런 날에는 여지없이 외할아버지는 따뜻한 밥에 날계란 한 개 탁 깨서 넣으시고, 왜간장을 약간 떨어뜨리고 슥슥 비벼 드셨다.


나도 한 그릇 같이 먹을 때가 많았다. 목구멍을 스르륵 넘어가는 것이 신기하고, 투명한 흰자가 조금 신경 쓰였지만, 간장에 비벼 먹으면 흰자도 먹을만했다.


가끔은 노란 마아가린을 반 숟갈 떼었다가 따뜻한 밥 위에 올리면, 살살 녹고 달짜근한 향이 낫다. 좀 기분이 좋은 날이면, 마른 김을 가루로 내어 올려 먹었다.


그 음식이 미국에서 인기라니.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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