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분명히 친근하고 따듯한데, 그 느낌은 남아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 Maxophone라는 이탈리아 록그룹의 음반을 꺼내 든다.
첫곡부터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니까 더 아름답구나 하고 감탄한다. 음반에 대한 첫인상은 그저 그랬는데, 이탈리아록 특유의 보컬의 하모니가 돋보인다.
나의 음반 수집은 카세트테이프 시절로 올라간다. 200개쯤 모았을 때, 넣어두었던 옷장이 무게를 못 이기고 밑부분이 떨어지곤 했다. 어머니는 나의 수집행위를 나쁘지 않게 보셨는지, 아버지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바로 들리는 단어는 '피아노 건반 파 아래 음 치는 놈'이었다.(실제로는 세 글자의 어휘인데, 아버지 말씀이라 그렇게 못쓰겠다). 진심은 아니셨을 것이지만, 왜 우리의 아버지들은 꼭 첫 반응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생소하거나 무언가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면 거부하는 자세. 뭐, 그러나,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렇듯, 아들도 그렇다.
난 팝을 참 좋아해서, 팝 음악사전에 있는 곡을 거의 다 들었고, 수백 곡의 가사를 외워서 전부 썼다. 그 덕에 외국에 가서도 살게 되고,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만, 그것이 꼭 영어성적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음반이 500장을 돌파할 때쯤, 어머니도 걱정을 하시기 시작했다. "너는 뭐가 되려고..." 사실 나는 마음속에 DJ가 되고 싶었다. 집 형편이 좋지 않아서, 무조건 좋은 대학 가서 성실한 직업을 가진 이공계 가서 운이 좋으면 과학자가 되자 했지만, 나는 악기 하나 변변이 다루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듣는 음악을 하는 음악으로 바꾸는 아티스트가 DJ 같았다. 그런데, 음악을 어디서 하지?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칵테일바다. 칵테일바에서 DJ를 하면 신선하겠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칵테일 이야기하는 사람, DJ 하는 사람을 보면 반갑다. 어머니께 그랬다. "나, DJ 되고 싶어요." 어머니 표정은 정말 많이 복잡했다. 기껏 공부해서 대학 가더니 한다는 소리가...
그런데, 과학자를 하면서도 학자가 되어서도 할 수 있는 직업들은 참 많다. 아인슈타인도 바이올리니스트 아니었나. 수많은 위인들의 이야기에서 과학자와 예술가는 사실상 짝이었다.
그러나,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기에, 그저 음반을 사 모으고 들었다. 그러다가 군 복무를 공익요원으로 하게 되었다. 저녁에 할 일이 없었다. 목표를 세웠다. 복무 기간 동안 음반 1200장을 수집하겠다!
말이 쉽지. 남은 복무기간이라 해도 500일 남짓. 하루에 2장 이상을 사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수집이니, 공부해서 정확히 좋은 음반을 사야 하는 것 아닌가.
장르는 아트록으로 잡았다. 당시에 아트록의 CD 복각 열풍이었다. 이탈리아록 몇 개 듣다가 정말 마음에 끌렸다. 그리고 우리나라 홍대와 이태원의 언더 그룹들 음악도 좋았다. 두 개의 장르에 집중해 보기로 하고, 카탈로그를 먼저 수집하고, 각 아티스트들에 대한 정보를 모은 책(사실 임진모 씨 책이나, 일본 수집 서적)을 읽었다.
아트록 매거진과 시완 카탈로그 등이 가장 좋은 레퍼런스였다. 카탈로그를 들고 다니며, 음반을 하나 구입할 때마다 표시를 하고, 사지 못한 음반 부분은 잘라서, 스테이플러로 찍어 가지고 다니면서, 음반을 구입하면, 거기에 끼워 넣었다.
공익을 마칠 때, 1200장은 이미 넘겼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찾기, 그것을 공부하고 자료 수집하기, 그것을 구입하기 위한 자금 조달 계획 수립하기, 음악 듣기, 음반 수집 히스토리 만들기.
이것은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기가 막혀하시던 어머니는 1000장이 넘어가자 말씀이 줄어드셨다. 아니 오히려 주변 분들에게 자랑하시더라. 지금은 몇 장인지 잘 모르나, 외국에서 10년 살면서 거의 음반을 사지 못했고, 살림도 넉넉지 않은 과학자의 삶에서 아이 둘 키우면서, 큰 빚 안 지고 한 4, 5천 장 모은 것 같기는 하다.
그 사이에 사업을 벌였다가 망해서, 눈물을 머금고 음반을 판 적도 있고, 좋아하는 후배들에게 음반을 나눠준 적도 있다. 매일 음악을 듣고 있는 아빠를 보니, 아이들도 음악을 좋아하고 창작 능력이 좋다.
그리고 내 음반은 아마도 규원이가 물려받을 것이다. 음악은 우리 집의 필수품이다. 비록 음반들이 무거워서, 이사 다닐 때마다 달팽이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망각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아주 오래전에 구입한 음반들도 다 구입했던 사정이 있을 것이다. 내 음반 컬렉션은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음반을 사고 그것이 어떤 이유로 저 음반과 연결되고. 그래서 내 컬렉션은 나름대로 이야기가 있다. 아니 있었다.
그런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용케도 그 자리에 그 음반이 있다. 내 기억과 상관없이 음반들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보면, 스필버그 감독이 환상특급에서 상상했던 '기억이라는 이름의 열차'는 없는 것 같다. 아니 있더라도 적어도 내 세상에서는 음반을 잘못 놓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가끔은 신기하다. 기억은 분명히 친근하고 따듯한데, 그 느낌은 남아 있는데, 이제 세상에 없다. 그 사실은 오래된 음반을 올리면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