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대문 사진을 보면, 오른쪽에 커다랗고 동그란 게 보입니다. 이것은 충북 청주시 소로리에 있는 '무엇'입니다. 무엇일까요?
청주소로리볍씨 기념탑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벼농사 유적인 '소로리 유적'이 발굴된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탑이라고 합니다. 타원형의 탑은 가운데 큰 벼알이 보이고, 그것을 둘러싼 테두리가 눈에 띌 것입니다. 녹색은 1만 년, 은색은 1천 년을 의미하는데, 녹색이 한 개, 은색이 7개이니, 총 1만 7천 년이 되었다고 보입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된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고대 문명이 벼 농경문화와 연결되어 있고, 그 유래가 길다고 보이므로, 우리 문화권이 생각보다 유래가 깊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그런데, '소로리 볍씨'라고 구글 검색을 해 보니, 이런 기사가 뜹니다. 2011년의 기사군요.
저는 이 두 개의 기사글을 보면서, 소로리볍씨에 대한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2021년 11월 12일 충북대학교에서 '청주소로리볍씨' 출토 의의를 밝히고, 청주소로리볍씨 박물관을 건립하자는 소망을 담은 시민강연회가 있었고, 영광스럽게도 그 자리에 참석하여, 벼 진화와 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 11월 12일 충북대에서 청주소로리볍씨 이야기 및 신마당극에서 벼 진화를 이야기하였습니
대학원 다닐 적에, 처음으로 소로리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일지도 모르는 탄화미를 몇 알 연구하시는 고 허문회 교수님을 도울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볍씨를 연구하시느라 전자현미경실을 예약하시고 저를 부르신 것입니다.
"진군은 옥수수 줄 수가 몇 줄인 줄 아는가?" 아니, 볍씨의 표면을 살펴보시던 교수님께서, 저에게 묻는 것입니다. 옥수수를 맛있게 먹어만 봤지, 그게 몇 줄인 지를 세어볼 리는 없지 않을까요?
그러시더니, 저에게 현미경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벼인지 무엇인지 그것의 표면은 마치 계곡 같기도 하고, 동굴의 안쪽 같기도 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샘플을 바꿔 보니, 어떤 것은 한 줄, 어떤 것은 두 줄, 돌기의 방향도 위로 아래로 제각기였습니다.
벼 껍질의 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돌기들이 보이는데, 그 돌기가 일정한 형태를 가지며, 그것을 통해 어느 식물의 종자인지를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연구가 이렇게 중요한 것인지 그때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교수님이 보실 샘플을 만드시는 것을 옆에서 도우면서, 평소 존경해오던 교수님의 옆에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소로리 볍씨여서 중요했다기보다, 무엇이든 깊은 애정을 가지고 관찰해야겠구나 하는 것을 느낄 뿐인 대학원 새내기였을 뿐이었으니까요.
오래된 토층에서 나온 샘플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 번째 기사글을 보시면 잘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샘플의 양도 한정되어 있고, 파괴하지 않고 샘플의 특성을 밝히는 것도 쉽지 않죠. DNA 분석을 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아마도 1996년)에 DNA 분석기술은 그렇게 섬세하지 못했습니다. 옆에서 선배가 샘플 몇 개를 의미 없이 훼손하자 바로 DNA 분석을 포기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DNA 분석 기술로도 벼를 밝히는 것은 무리합니다. 세포 한 개에서도 전체 염색체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최근에서야 상용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샘플 DNA를 온전히 추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더욱이 이미 당시에 이 벼 샘플이 나온 17,000년 전의 벼는 지금의 벼와 사뭇 다른 역사와 진화 과정에서 재배화 과정 중인 것으로 판단되어, 현재 분석을 하더라도 다른 형태의 결론에 다다르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도대체 17,000년 전, 아니 그 이상 오래된 시점에서 우리 한반도와 인근 지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쌀과 밥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게 되었을까요?
그러려면, 벼의 기원에 대하여 중국 등 기존 연구진들이 주장하는 '일원론', 또는 '유일론'에 대해서 검토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당시 소로리 지역이 덥든 춥든 빙하기냐 아니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벼는 한 가지 식물에서 유래했을까요?
그렇게 생각해 오던 것이 주류의 생각이었습니다. 아마 1차적으로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어디쯤, 그러다가 히말라야 지협을 건너, 미얀마를 포함한 인도차이나를 넘어서, 비로소 벼다워지고, 양쯔강을 건너서 자포니카도 발생했다. 그렇게 생각해 왔지요.
벼는 기다란 모양의 열대벼(장립종)와 온대벼(단립종)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물론 재배벼에는 예외가 많지만, 이렇게 두 개의 열대벼, 온대벼가 생태형으로 정착되어가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진짜로 우리가 생각하는 벼가 된 것일까요?
더욱이,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의 벼가 된 다음에 벼농사가 시작되었을까요, 아니면 벼재배가 현재의 벼가 아닌 모습일 때부터 가능했던 것일까요?
이에 대하여, 유전체 분석을 통하여, 미국의 뉴욕대 교수인 Michael Prugganan의 논문을 잘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일원론을 주장하는데, 유전체 전체와 유전자 관점을 나누어 해석할 것을 제안했지요. 그런데, 어찌 되었든 중국에서 재배벼의 기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Crop Science and Evolution이라는 전통적이지만 작은 작물 진화 전문 잡지에서 출판한 논문은 인디카(장립종)와 자포니카(단립종)의 분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벼가 아닌 훨씬 이전 단계에서 분화한 것이라고 제안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증거로 DNA 분석을 했지요. 이것은 최근 중국 운남농업과학연구소의 벼 진화학 권위자 Dr. Tao팀에 의해서도 인용되었습니다.
2. 소로리 지역은 빙하기? 간빙기? 어찌해서 그런 곳에 벼가 나올 수 있느냐는 의문
이 질문은 너무나 큰 질문입니다. 17000년 전에 우리나라 상황만 본다면, 지질학적 설명이 어느 정도 반박의 여지가 있지요. 그러나, 벼는 생각보다 강한 식물입니다. 10도 이하의 온도에서도 생존 가능한 야생벼 및 재래벼가 지금도 발견이 되곤 합니다. 그리고 벼과는 기후변화에 가장 유연하게 진화해 온 식물이지요. 가장 많이 진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작물화되면서 그 진화 속도는 굉장히 빨라지고 다양해졌습니다.
아래 그림은 조금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 봅니다. 야생에서 재배화되지 않은 벼를 '야생벼'라고 하는데, 현재는 거의 열대지방에 분포합니다. 우리 연구진은 현대의 벼에서 인디카와 자포니카를 구분하는 염색체 부위를 찾은 후에, 그것으로 야생벼를 분석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벼와 유사한 염색체 부위 중에 인디카/자포니카와 같은 염색체 부위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자포니카 유형이 더 많은 것들이 있었지요. 그건 오히려 원래 벼의 조상으로 생각하는 '루피포곤'보다도 더 오래된 기원의 야생벼들이었습니다. 결국, 현대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야생벼 중에 자포니카 염색체 부위가 발견된다는 것은 '일원론'에 있어서 모순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벼들이 각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진화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야생벼들도 벼가 분화되고 나서도 개별적으로 진화했으니까요.
자, 그럼 소로리에서 발견된 것은 벼일까요, 아니면 벼가 아닐까요? '벼'와 '벼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벼'는 Oryza sativa L.이고, '벼과'는 벼를 포함한 family(과)를 말합니다. 피, 보리, 기장, 수수, 옥수수, 밀 같은 곡식들은 다 벼과지요. 아마 인간은 오래전에 벼과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근에 Nature에 기장이 우리 한국어의 뿌리가 되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지금의 중국 요하 지방에 있었다는 논문이 출판되었지요. 단군신화 고조선 신화도 요하 지방에서 나오니, 정말 신기하게 여겨집니다. 어찌 되었든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벼과인 '기장'을 재배하여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소로리에서 나온 곡물이 벼냐, 벼과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저 논문을 보면, 벼보다도 먼저 먹었을 것 같든 기장 재배 유적지가 9000년 전입니다. 소로리 유적은 17000년이니, 소로리 유적의 사람들이 고조선의 선조보다도 더 오래되었을 듯합니다. 현재의 땅의 모양이나 위치, 기후를 본다면, 잘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단립종과 장립종, 벼다워지는 것에 관계된 유전자들은 훨씬 더 오래된 벼 비슷한 벼 속의 야생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자포니카가 열대지방의 야생벼에서 발견되고 있다면, 인디카가 온대/냉대 지방에서 발견된다고 해서, 크게 무리한 가정은 아닐 것입니다. 한번 다음 그림을 보지요.
벼과의 진화는 지구의 대륙들이 하나로 뭉쳐 있었던 '팡게아'라는 시절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대륙들이 붕괴하고 갈라지고 변화하는 사이에 더 복잡한 계곡, 지협, 해협, 강, 평원 등이 생기면서, 진화는 유전자 풀의 이동, 격리, 부동 등이 생기면서 더 복잡하게 이루어집니다. 벼과 식물들은 강을 따라, 바람을 따라, 그리고 동물과 인간을 따라 이동하게 됩니다.
첫 번째 그림을 보면, 현재의 인도/동남아 일부 지역에 해당하는 곳에 이미 온대벼인 자포니카 염색체 단편이 있었다는 것이죠. 최초기원지와 인디카 단편이 많았던 어떤 벼과 식물은 대륙 이동 때문에 더 많이 복잡하게 퍼지게 됩니다.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염색체 단편이 벼 속인 야생벼에 존재하는 양상과 그 유전자의 발생연도를 추산해 보면서 그려본 그림을 보면, 우리나라 소로리에 어떤 벼가 생긴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진화적 산물로서의 벼는 각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지요. 더욱이 한반도는 어쩌면 대륙과도 붙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엄청난 수의 공룡 화석과 발자국, 알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화성시 송산 지역에도 공룡알 화석이 다수 발견되었지요. 따라서, 아마도 한반도는 생각보다 온난했고, 벼과 식물들도 같이 엄청나게 분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야생성이 재배특성으로 변하여, 사람들에게 재배될 수 있으려면 어떤 환경이어야 할까요? 얼핏 생각하기에 열대지방 같은 곳에서 재배화가 가속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특히 종자식물의 경우에는 건조하여야 뿌리가 건강한, 즉 종자크기가 적당히 커지는 식물이 됩니다. 그래야, 종자를 먹으려는 포식자에 의해서 선발되고, 그것이 인간이라면 드디어 재배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따라서, 재배 기원이 되는 좋은 조건은 사계절이 있고 건조하며 척박한 환경이 종종 찾아오는 온대지방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물의 기원지를 밝힌 것으로 유명한 바빌로프 박사는 각 작물의 기원 지를 밝혔고, 많은 곡물들이 열대지방 또는 온대지방 유래(콩, 밀, 옥수수를 보세요)로 생각합니다. 벼는 동남아, 남아시아 기원일 것으로 보았는데, 실제 기원지 지역은 열대우림이라기보다는 건기/우기가 명확하며, 오히려 스트레스가 매우 많은 벵갈 지역과 네팔 산간으로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합니다.
벼라는 '식물의 기원지'와 '벼의 재배기원지'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벼를 본격적으로 재배하려면, 벼를 기르는 체계적인 시스템이나 유적지의 문명 발달 경로, 그리고 동시에 출토된 유물들, 종자의 보관상태, 유적의 지리적 연속성 등의 많은 정보가 필요할 것입니다. 단순히 한두 가지 방법이나 유전체 분석 만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식물학적'인 것만으로는 해석이 안되기 때문이죠.
그럼, 인간은 왜 하고 많은 식물 중에 벼를 주요한 곡식으로 열량원을 삼았을까요?
원래 인간이 제일 먼저 먹기 시작한 것은 육류, 골수, 그러다가 조개, 그런 식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침이 고이게 하는 식품들을 잘 보자면, '감칠맛'이 그 핵심적 맛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열량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맛은 본래 '단맛'이겠지요. 그런데, 식욕을 돋우는 맛은 실제로 '감칠맛'입니다.
소고기, 생선, 밥, 토마토, 치즈... 모두 감칠맛 덩어리인데, 이들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을 잘 분석해 보면, 글루탐산의 함량이 높습니다. 우리 혀의 글루탐산 수용체가 곧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죠. 어쩌면, 근육에 박혀 있는 글루탐산 덩어리인 고기를 탐닉하던 인류가 글루탐산 수용체가 발달하여, 글루탐산 함량이 매우 높은 쌀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요?
부끄럽게도 기사글에 실리게 되었지만, 아직 저 유전자의 기능은 잘 모릅니다만, 저 유전자가 쌀 단백질의 아미노산 함량에 관여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기사 중간의 그림을 보시면, 글루탐산(Glx) 함량이 너무 높아서, 아예 다른 아미노산과 따로 떼어서 그림을 그려 놓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이유라면, 유목민족(고기)이면서, 반도에서 채취(조개)를 하면서 살던 삼한시대 이전의 선조들이 글루탐산 함량이 높은 벼과의 어느 식물을 취하여, 재배를 시작하여 진화의 속도를 높였다고 가정을 해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즐겨먹는 장류나 젓갈도 죄다 글루탐산 덩어리며, 생일이면 먹는 미역국과 김밥에도 글루탐산 천지입니다.
'감칠맛'은 'umami'이며, 일본의 과학자가 기존의 맛에서 분리 발견해낸 맛의 종류죠. 이 맛을 일본인과 우리가 구별하고 가장 좋아하며, 특히 쌀에 대한 오랜 애착을 가졌다는 것이 특별히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럼, 여기서 궁금증이 또 하나 생깁니다. '글루탐산'은 아미노산인데, 그럼 단백질이고, 단백질이 많은데 쌀의 품질은 어떻게 설명이 되는 것이죠?
보통 고품질 쌀이라면 단백질 함량이 낮을수록 좋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글루탐산을 포함한 아미노산의 함량은 매우 적습니다. 실제로 미각의 극치가 아주 낮아서 예민한 것이죠. 이런 논리라면, 실제 최고의 고품질 쌀이라면, 단백질 함량이 아예 '0%'인 쌀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점점 재미있어집니다.
어떤 질문에 답을 하려고 노력하다가 보면, 또 다른 새로운 질문들이 더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 지식은 늘어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