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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토 쌀? 이탈리아 방문기

by 진중현

이탈리아 벼와 쌀 견학과 간단한 토론 등을 마치고,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다.


리조토 쌀이 갖추어야 할 쌀의 3요소. 쌀알이 크고. 국물을 잘 흡수해야 하며. 설익은 듯한 씹힘감(Ardente라는 특이한 물리성)이 핵심이란다. Riso Aqurello라 말하는 '최고의 품질'은 같은 용어지만, 많은 다른 기술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탈리아 마지막 숙소인 Cascina Galizia와 Verona에서 먹어본 리조토에서 그 맛을 생각해 본다. 아니 좀 더 섬세하게 묘사하자면, 특유의 씹힘성과 입안에서 쌀이 머무는 시간 동안의 맛의 변화다. Verona의 Amarone Red Wine Risotto는 전남 지역의 홍어만큼이나 나에게는 진입 장벽이 존재했다.



잘 숙성된 wine의 알코올이 스며드는 과정은 필수적인데, CRR 이탈리아 쌀 연구소에서 리조토가 되어가는 5단계 중, 3단계에서 그것의 역할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결국 국물이 쌀에 스며들게 하는 것에 대하여, 전분립의 크기와 그 결정 구조, 그 전분 덩어리 사이의 공간의 크기가 이 모든 식감의 핵심인데, 육종가는 그 크기를 유전적 관점에서, 재배자는 수확 후 관리에서 표준적인 쌀을 생산하고자 한다.



가장 많이 듣게 된 쌀 품종, Carnaroli. 우리는 보통 쌀의 품위를 말할 때, 아밀로스 함량과 단백질을 말하지만, 이들은 그 용어를 말하지 않았다. 계속적으로 전분의 함량과 쌀알의 외관, 즉 크기와 장폭비를 말할 뿐이었다. 이탈리아인들은 '가장 이탈리아적인' 쌀의 정의에 7가지 품종을 제시하고, 4가지 외관으로 설명했다. Carnaroli는 압도적인 쌀 생산을 자랑하는 이 지역, 베르첼리 지역 등에서 절대적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맛의 표준이 되었다.



취향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RR의 그 많은 품종들이 왜 필요하고 육종은 왜 필요할까? 이미 Carnaroli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쌀을 재배하고 다양한 새로운 가공품을 만들어 제공하는 Riso Melotti도 Carnaroli가 중요하지만, Vialone Nano도 함께 생산, 활용한다. CRR은 국가연구소지만 평소에는 15명 내외의 정규 인력 만으로, 거의 300가지 품종의 다양성을 제공했는데, 우리나라 벼 품종들이 보여준 다양성보다 그 범위가 넓다.



이탈리아 벼와 쌀 연구는 외부와의 교류가 비교적 활발하지 않은 듯 보였다. 품종명에 Asia가 있는데, 단지 장립종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고, Chinese나 -mochi가 붙은 이름들을 보자면, 그 품종의 수가 아주 제한적임을 알 수 있다. 많은 품종 중에서 한두 가지 품종이 시장 내 우위를 보이는 현상은 우리나 이들이나 마찬가지인데, 다양한 취향에도 어떤 구심적인 요소가 있으며, 그 요소를 구현하는 것은 리조토가 '종자에서 식탁까지' 오르는 각 단계에서의 담당자의 철학에 달려 있다.


심지어, Riso Aquerello가 담아낸 7년짜리 숙성 쌀 조차도 표준 recipe가 없다. 내 눈에 Aquello는 Carnaroli의 새로운 품종이다. 단지 그 품종이 수확 후 처리에 의하여 재탄생된 것이다. 그 품종을 아낀 수많은 chef들이 자신들의 미적 감각과 식도락가들의 비판적 피드백을 접시에 담아낸다. 그러기에 리조토 만드는 Carnaroli는 물리적인 또는 과학적으로 고정된 품종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생산자와 전통이 고집하는 어떤 인덱스, 그 인덱스를 충족하게 하는 생산자, 그 생산이 가능하게 하는 점진적인 자연의 변화가 소리 없이 육종의 과정에 녹아들었다.


나에게는 우수한 쌀이 되어가는 각 단계마다 중요한 요소가 상충되는 듯한 모순을 느끼곤 했는데, 이곳에서 그것들이 조화롭게 돌아가는 선순환이 왜 그런지 이해되기 시작한다. 정말 개성도 다른 네 사람이 여행 중간중간 합류하며, 여행을 회고하는데, 그 식사시간과 함께 다니는 차 안은 세상 유일의 밥과 쌀 토론장이다. 우리는 이 여행의 끝에서 각자 방식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각자의 영역에서 적용해 볼 것이다.


과거에 느꼈던 모순감은 사실 그 자체로 발전의 원동력인 셈이다. 네 명이 모두 잘 만들어진 orthodox 한 리조토에 공통의 의견을 내어놓는다 우리나라 같으면 '갖다 내어버렸을...'이라는 과격한 용어도 무리하지 않을 정도다. 우리는 우리의 밥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크지만, 세상은 더 넓고, 우리가 버렸을 취향을 표준 삼아 다른 방향을 이끌어내고 심지어 더 세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탈리아인들은 14세기 정도에 본격적으로 쌀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것 같다. 최근까지도 이어져오던 이앙법은 사라져 버렸다. 윤영식 대표는 역시 농부답게 달리던 차에서 내려 흙을 만지고 이삭을 어루만지고 물길을 살핀다. 비슷하지만 생소한 환경에서 벼 품종 특성 중심으로 바라보는 나와 또 다른 것을 보고 이야기한다.



직파, 정밀농업, 기계사용... 이런 용어는 어떤 의미일까. 젊은이가 사라져 버린 농촌에서 이앙법을 포함한 집약 농법은 그 자체로 지속 가능할까. 상상만 해오던 미래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직파를 하니, 잡초와 도열병, 이형주와 잡초벼가 극성이다. 어느 정도 생산성 감소를 감수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Riso Melotti는 물벼를 1kg에 2유로 이상을 받는다고 한다. 재배에서 생긴 손해를 마케팅과 소비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낸다. 철저하게 소비자 중심, 생산자 중심으로 역행하여 기술체계를 구축한 자가 성공하는 것이다.


농민이 6차 산업이라는 명목 하에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은 무모한 것인지도 모른다. Cascina Galizia는 Agriturismo에 집중하고 과거 농장의 흔적만 남겨 두었다. 도시인이 농촌에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에 집중한 결과다. Aquerello는 Carnaroli 재창조에 핵심 역량을 집중했다. 세상 유일의 쌀 제공자가 되어 64개국에 수출한다. 심지어 저개발국 몽고에까지. Riso Melotti는 연구하고 창조한다. 충성 소비자의 안정적 소비에 주안점을 두었다. CRR은 통합적 연구로 농업인의 연구에 부응하며 기업과 친화적으로 소통하고, 쌀에 대한 메시지를 완성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내가 한국의 연구자들과 소통할 때마다, '왜 우리는 모두가 모든 것을 하지?'라고 한다. 다들 같은 고민을 하면서 마음대로 나름대로 그냥 제 갈길을 갈 뿐이다. 그 이유를 물으면 소통과 대화 부재를 말한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결정 방식이 여전히 생산 중심이고, 과거의 목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미래를 보는 것일까. Riso Aquerello를 먼저 찾아가는 길에 잠시 주변 도시를 보았는데, 제법 큰 도시에 상점조차 없다. 거대한 들판 사이에 고립된 공동체 공간에도 이제 빈 방들만 있을 뿐이다. 논에는 잡초가 많고, 수확이 한창일 들판 사이를 가로지르는 도로에 길을 막는 트랙터가 안 보인다. 수확기를 놓친 논들이 종종 보인다.



아니면 과거를 보는 것일까. 벼이삭을 보면 축복받은 지중해 연안의 나라인 것을 뽐내고 있다. 이삭은 곧추서서 수수처럼 보이고, 이삭의 벼알들은 크고 단단하며 성겨서 흡사 포도알 같다. 포도주를 담가먹고 그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벼도 그런 것을 골랐을까? 덜 익은 밀가루처럼 덜 익은 쌀 전분 맛이 최고라는 이들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광활한 농지에 땔감과 연료가 부족하지만, 물은 풍부하니 밥을 지을 때 뜨거운 물에 넣고 휘젓는다. 밥을 짓는다기보다 국수를 삶아내는 과정 같은 것이다. 당연히 가뜩이나 큰 쌀알이 고르게 익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 보니 입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 리소토의 소스가 한결같이 시큼한 것은 침샘을 자극하여, 입안에서 호화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품종이 성립되고 그 쌀이 내 입 안에서 소화되기까지의 과정은 이탈리아 쌀 역사를 복기하는 과정이다.


내일은 스페인이다. 이제 뭘 보게 될까. 이제 비로소 완전체 수다꾼 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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