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이쁜 세상에 못난이라니.
어렸을 적에 집집마다 이 세 못난이 인형이 있었다. 엄청난 유행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못난이를 사랑한다. 못난이는 경계심을 풀어헤치는 큰 힘이 있다. 그리고 못난이는 실제 실력으로 승부한다.
쌀의 세계. 우리나라는 한참을 생산량이 많은 쌀을 선호했다. 먹어야 할 소비자와 돈을 많이 벌어야 할 생산자가 딱 맞는 상황이다. 많이 생산하고 먹고 소비해야 하는 구조니까.
이렇게 생산성이 많은 쌀은 쌀로 치면 잘 생긴 거다. 잘 생긴 남성 같은 쌀이다.
그러다가, 쌀의 품질이 강조되었다. 맛있고 향도 좋고 모양이 이쁘고 바른 것이 좋은 쌀이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 같은 쌀이다.
둘 다 잘생긴 쌀이다.
그런데, 맛있고 멋있고 건강한 쌀들이 시장에서 인기가 없어졌다. 예전보다 훨씬 좋은 쌀인데 생산량이 많다고 줄이라고 하고, 아무리 맛있어도 워낙 세상에 맛있는 것이 많아서, 밥맛은 아무것도 아니고 물린다 한다.
그리고 맛이 좋아서 다른 곡물보다 많이 먹고 소화도 잘되다 보니, 당수치가 올라가게 한다고 먹지 말라고 한다. 실은 너무 많이 잘 먹어서 건강이 안 좋아진 것인데, 그렇게 몸이 예민해지다 보니, 가장 많이 먹었던 쌀이 주범이 되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잘나고 잘생겨서 버림받았다. 차라리 못난이가 나았을 텐데.
이제는 기후변화의 주범에 물과 비료를 많이 쓰는 벼농사가 들어간단다. 이제는 잘생긴 쌀들이 살 터전도 바뀌어야 한다. 잘난 쌀들은 그런 데서 못 산다. 물도 부족하고 비료도 적고 척박한 땅에서 나는 쌀들이 나올 곳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육종가들이 그런 데서도 좋은 쌀들을 자꾸 만들어대니, 이제는 아예 좋은 쌀을 개발하지 말란다. 이 쌀은 검은 쌀이라 일반 쌀이 아니니 잡곡으로 먹는 것이라고 해도, 이 쌀은 사료용이라서 사람이 안 먹는다고 해도, 실제로 쌀이 맛있는 것인지, 맛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그 쌀을 자꾸 찾아서 그런 것인지, 곧이듣지를 않는다.
이제 벼와 쌀 품종 개발을 할 명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런데, 못난이들이 선전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정말 맛있는데 병에 잘 걸리는 약골, 정말 향이 좋은데 씨앗을 많이 만들지 못하는 불임, 스트레스에 강한 체력왕인데 매력이란 눈곱만치도 없는 투박이, 몸에 좋은 물질을 많이 만드는데 정작 자기는 병에 잘 걸리는 바보 의사 같은 못난이들이 각광받는다.
다 잘하지는 못해도 한 가지는 분명히 잘하는 것들, 그것도 정말 뛰어난 것들이 세상에서 빛을 본다고 한다.
못난이도 실은 잘난 게 있다는 것을 어찌 알까? 첫째는 다양성을 아는 것이다. 기준이 다양해야 한다. 둘째는 구별성이다. 그것이 좋고 나쁨을 프로파일링 하여 정리해야 한다. 셋째는 탁월성이다. 엄청나게 뛰어나야 한다.
그런 못난이들이 조용히 있다가 '갑툭튀'하면, 사람들은 살짝 당황했다가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새로운 쌀들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