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케이스가 딱딱한 하드보드로 LP 커버를 흉내 낸 것들이 있다. 이놈들은 곰팡이가 많이 낀다. 그래도 어쩌랴. 희귀반을 많이 복각했던 Akarma 레이블에서 나온 이탈리아나 유럽 프로그래시브나 싸이키델릭 중에 이런 것들이 꽤 많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앨범. Periferia Del Mondo는 2000년에 결성되어 4개의 음반을 내었던 그룹으로 현재진행형인 것 같다. 정보가 거의 없는 그룹이라 할 말은 없고, 다른 이탈리아 프로그래시브락 그룹과는 많이 다르다. 일단 영어로도 부르고 영국 그룹 같기도 하고.
그룹은 Banco del Mutuo Soccorso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하는데, 멤버 중에 있다고 한다. 커버 안쪽에 보면 록그룹 Area 멤버의 추천인가 추측되는 이탈리어 문구들이 있으니, 시시한 그룹은 아니리라 생각되어 구입했던 것이다.
사실 Akarma의 음반들은 희귀반 중에서도 나름 선별된 것들을 보였기에 상당히 보증되는 수준의 음반을 구입할 수 있었다.
아내와 같이 음악을 들으며 밥을 먹다가, 불현듯, 이탈리아 프로그래시브락들은 '고수 같다'라고 했다. 고수는 처음에 잘 먹기 힘들지만, 자꾸 먹으면 더 찾게 되고,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왠지 더 반가워지고.
그렇게 음악들은 빵 같기도 하고, 김치 같기도 하고, 디저트 같기도 하고, 이렇게 두리안이나 고수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고수 맛과 같은 별미를 알게 된 사람에게 디저트 같은 음악은 너무 달다.
가끔 예술성이 있는 음악들을 들으면, 너무 격식 있는 요릿집의 스테이크 같아서 쉽게 물리고, 너무 대중성 맛이 많이 느껴지면, 좋은 빵 먹는다고 파리바게트를 찾는 꼴이다.
나는 음식점에 가거나 그러면, 그 집에만 있는 메뉴가 있을 때, 꼭 시켜 먹는 사람이다. 우리 가족은 나의 성공과 실패를 간접 체험하는 편이다. 뭐... 음식과 음악은 참 통하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것이 또 사람관계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나는 내가 꽤 까다로운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 한 편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난 대체로 누구를 만나든 진지한 이야기를 쉽게 꺼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단계 따져가면서 사람 만나는 것도 피곤하고, 머릿속에서 너무 많은 계산을 하기도 싫고, 사람들의 특성 맞춰가면서 피곤하게 살아봤자 별 것 없기 때문이다.
음악의 취향이 분명하고 깊이가 비슷하면, 아무리 새로 만나는 사람도 금세 친해질 수 있다. 그것을 존중하는 사람들도 너무 반갑다. 어떤 음악을 듣는 존중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음식도 사람 간 관계도 그런 것 같다. 매사 부정적이고 까다로운 사람은 싫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엄청나게 까다로운 사람들이 마음에 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