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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 Jun 28. 2020

마트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

행복을 삽니다.

마트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꽃’이다. 한 마트만이 아니라 브랜드에 상관없이 모든 마트들이 그렇다. 항상 들어갈 때 한 번, 나올 때 한 번씩 그 꽃들 앞에 서서 한참을 보고 망설인다. 작은 다발에 싸면 2유로 비싸면 4-5유로라는 크게 비싸지 않은 가격과 예쁜 꽃들을 보면 결코 지나칠 수 없다. 사진에 보이는 포장된 큰 다발들은 10유로가 넘는다.

가톨릭의 비율이 높은 아일랜드에서는 이스터(부활절) 기간을 큰 행사로 여기는데, 이스터를 맞아 달걀 모양의 다발을 판매했다. 뿐만 아니라 계절이 지나감에 따라 새로운 꽃들을 보는 재미도 있어서 자주 가더라도 항상 지나치지 못하는 곳이다. 작약, 백합, 해바라기 등 ‘꽃집’에서만 볼 수 있었던 예쁜 꽃들도 이 마트에서는 자주 만날 수 있다.


모든 마트 입구에 꽃을 배치해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화려한 것. 기분을 좋게 하는 것. 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꽃’이다. 꽃을 고르고 나서 장을 보면 테이블 위에 꽃이 놓일 것을 상상하며 그에 맞는 음식들을 좋은 마음으로 구매할 수도 있는 전략적 마케팅이기도 하다.


나도 그 전략적 마케팅에 영업당한 한 고객이다. 입구에서 만나는 꽃들은 나에게 행복을 준다. 그 행복을 집으로 가져오면 1주일 넘게 지속되기 때문에 꽃을 신중하게 골라 데리고 온다. 내가 샀던 꽃은 카네이션(?)과 레인보우 튤립이다. 가격은 각각 3유로, 6유로. 소스병에 물을 조금 담고 꽃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 예쁘게 꽃아 책상 위에 두면 1 주일 내내 기분이 좋아진다. 삭막한 방에 행복이 찾아온 기분이다.


마트 구경을 하다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꽃을 고르는 모습을 본다. 누군가 무슨 꽃을 고르는지를 관찰하다 보면 어떤 의미로 사는 건지 짐작할 수 있다. 연인에게 선물할 것, 집 안에 놓을 것, 축하해 줄 것 등등 각자만의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나는 행복을 나에게 선물하는 이유로 꽃을 산다. 한마디로 행복을 사는 것이다.


단점은 꽃이 시드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고 결국 내 손으로 마지막 순간을 정리한다는 것인데 그때마다 다음에 내게 올 행복을 생각하면 마음의 위로가 된다. 아직 제대로 피지 않은 꽃을 데리고 와 피워내고 시들 때까지 곁에 두면서 내가 가진 다른 행복과 슬픔들도 영원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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