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xx Jul 30. 2017

10. 이 여행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아찔한 뮌헨 믹스룸의 추억

파리에서 독일로 떠나는 날 아침

오후 세시 반 기차라 시간이 많이 남았다.


숙소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짐 정리를 하며 새로 만나는 나라의 설렘과 떠나는 나라의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기차 시간에 맞춰 출발하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시간을 틈타 숙소 침대에 걸터앉아 마지막 점검을 했다. 우리의 준비성을 철저하게 믿고 무심한 얼굴로 독일 호스텔 예약 바우처를 숙소 침대에 앉아 폰으로 확인했다.

.

.

.

?

이럴 수가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썹을 찡그리고 눈을 가늘게 떠 바우처와 폰 화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3박 4일을 묵을 독일 숙소 예약이 오늘 하루 한명만 예약된 것이었다. 갑자기 얼굴에 피가 오르는 느낌이 들고 심장 이 쿵 떨어짐을 느꼈다.

내일도 아니고 당장 오늘 묵을 곳이 없다니!

깜짝 놀라 정신없이 근처의 호스텔에 남은 자리를 찾았다. 남아있는 자리가 없을까 걱정했던 것도 잠시 곧 하나남은 방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지 도착하기 전에 알아서 이렇게 예약할 수 있었어 라며 친구와 가슴을 쓸어내리며 우리의 준비성을 칭찬했다.


 



어느덧 떠날 시간

동역에 도착해 테제베를 타기 위해 기차 플랫폼으로 갔다.

첫 파리 역에 도착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지하철 티켓 까르네를 허겁지겁 구입하던 첫날이 생각났다.

반도에 살고 있지만 사실상 섬나라와 다름없는 국가의 국민이라 한 나라와 나라의 국경을 하늘이 아닌 땅에서 넘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여러 나라를 맞대고 있는 대륙에 산다는 느낌은 이렇겠구나.   

영국에서 프랑스를 넘어올 때와는 다르게 넓은 땅 프랑스에서 또 더 넓은 땅 독일 끝 뮌헨으로 가는 시간은 6시간 30분이 걸렸다.

떼제베를 타고 가며 찍은 풍경

기차 안에서 간단하게 사온 과자들을 먹고,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돌려보며 그 오랜 시간을 버텼다.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하늘은 너무 맑았고 보이는 풍경에서 산맥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다른 이국의 풍경이었다.


밤 10시 독일 뮌헨 중앙역에 도착했다. 비행기와는 또 다른 느낌의 지루함, 체력적으로 힘듦을 견딘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에 다른 숙소를 찾아야 하는 우리는 두려움에 서로의 숙소를 찾아주었고 다음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내가 머물 새 호스텔을 지도로 파악해 두고 친구를 호스텔에 데려다주고 체크인을 하기 위해 혼자 호스텔로 온 짐을 이고 걸어갔다.

28인치 캐리어 하나와 큰 배낭 하나 그리고 작은 보조가방 하나. 


밤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듬성듬성 몇몇의 무리들이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10분쯤 걸었을 까

신호등을 건너 내가 묵을 호스텔이 있는 골목에 들어서니 캄캄한 골목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뒷덜미에 끈질긴 눈들이 붙은 느낌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예약한 호스텔의 간판이 보이자 할렐루야를 외치며 그곳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왼쪽엔 작은 리셉션이 있었고,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앉아있었다.

정면에는 계단이 하나 있었다.

로비는 협소해 보였지만 인테리어들이 중세 유럽의 성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체크인을 하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가 내 이름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게 웬 걸 그들은 내 이름을 찾을 수가 없다며 의아해했다.

나는 당당히 캡처해온 호스텔 예약 페이지를 보여주었다.



-자 여기 봐 내가 여기 예약을 했잖아!

-오 어쩌지 이건 여기가 아니라 다른 위치에 있는 호스텔이야!

알고 보니 이 호스텔은 체인이 지역 여러 군데에 있었고 뮌헨에도 몇 군대의 체인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의 시간이 밤 10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맙소사

리셉션의 잘생긴 직원이 여기에서 그 지점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거나 트램을 타고 가라고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이 곳에 남는 방은 없냐 돈을 더 내고라도 여기에서 묵고 싶다고 말하자

더 남는 방은 없다며 단호히 웃으며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잘생긴 독일분 이시어 그렇게 이쁘게 웃지만 말고 날 여기서 잘 수 있게 해주세요'


시간이 늦지만 않았어도 원래 예약한 곳을 찾아갔을 터였다.

하지만 난 밤 10시 반이 넘은 시간에 혼자 택시를 타고 다른 지점의 호스텔에 갈 만큼의 체력과 용기가 없었다.

이미 걸어오면서 큰 덩치들의 게르만족의 몇몇 무리들에 겁을 잔뜩 집어 먹었던 나였다.

멍하니 있다가 고맙다며 그곳을 나왔다.

이 날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는 나의 여행사진이 말해주고 있다. 

이 날 만큼은 한 장의 사진 말고는 어떤 사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밖에는 여전히 여러 무리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지만 분위기가 험악해 보였고 급기야는 술병을 깨기까지 하는 사람들마저 보였다. 아까는 없던 경찰차까지 보였다.

친구에게 연락하기 위해 다시 독일 중앙역으로 갔지만 와이파이는 잡히지 않았고 원래 묵으려던 호스텔의 위치를 파악해둔 터라 다른 방법이 없어 빠른 걸음으로 호스텔에 찾아갔다.

정신은 반쯤 나가 있었고 몸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호스텔의 와이파이를 연결해 친구에게 보이스톡으로 상황을 설명하니 곧 헐레벌떡 뛰어오는 친구와 만났다.

낮에 이미 자리가 없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스텔의 리셉션 직원에게 남는 방이 하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음 여자 룸에는 자리가 하니도 없어 미안

-정말 하나도 없어? 지금 시간에 갈 곳이 없어 제발 

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며 말했고

직원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6인실에 자리가 하나 남아있긴 한데...

-그럼 그곳에서 잘게!

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꼬리를 잡아채 얼른 말했다.

-.. 5명의 남자애들이 있고 너 혼자 여자야 그래도 괜찮겠어?

-....

-....

-어쩔 수 없지 그냥 줘


'하하 괜찮겠지 내 친구도 여러 믹스룸에서 자봤다고 했는데 괜찮다고 했어'


일단 짐을 넣어놔야 했기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이기로 했다. 락커룸이 방안에 있었고 믹스룸 방문을 열었는데 컴컴한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믹스룸에 자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는 날 걱정한 친구가 로비에서 밤을 새우자고 했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둘 다 몇 시간 버티지 못하고 각자 룸으로 들어갔다.


.

.

처음으로 써본 믹스룸은 다신 경험하고 싶은 않은 그런 것이었다.

새벽에 너무 졸려 올라간 방안에는 아까와 같이 컴컴한 어둠이었지만 5명의 '보이'들이 자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고등학교 때 체육 시간이 끝난 남자반 앞을 지나가면 나는 그 익숙하지만 절대 다시 조우하고 싶지 않은 냄새가 코를 엄슴해왔고 서라운드로 여기저기서 골 아대는 코 고는 소리에 미칠 것만 같았다.


'아 살려줘..'


리셉션 언니의 걱정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을 괜찮냐며 물어보던 직원의 배려에 눈물이 났다.

결국 몸만 누워있다 도저히 후각과 청각의 고문을 참지 못하고 로비에 혼자 나와 한국의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어제까지 행복했던 여행의 기억은 사라지고 몸과 정신은 이미 한국 내 방에 가 있었다.

이런저런 작은 실수가 있어서 고생은 한 적 있었지만 오늘만큼의 타격은 없었던 평탄한 여행이었다. 

나는 로비 소파에 모로 누워 생각했다.


'이 여행 앞으로 남은 한 달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8.9 여행에도 휴식이 필요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