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서 믿음까지
갑작스레 배가 아파 친구와의 약속도 취소하고 침대에 다시 누웠던 어느 날, 몇 가지 심상치 않은 생각들이 스쳤다.
요 며칠 해가 지기도 전에 몸이 녹초가 돼 요 며칠 잠만 잤었지.. 근데 벌써 아이가 찾아온 걸까, 피임을 안 하기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이틀 전 그 약속에서 역시 술을 마시는 게 아녔어.. 그래도 역시 아직은 아니지 아닐까.. 지금이라도 엽산을 챙겨 먹기 시작해야겠다.. 등등
임테기를 하기 전,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싱숭생숭한 마음을 토로하며 반반의 확률인 것 같다고 말했지만 속으로 나는 어떤 예감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임테기는 두줄이었고, 그 소식에 남편은 크게 기뻐했다. 월요일에 산부인과에서 아기집을 확인하기 전까지 속단하지 말자며 나를 타일렀지만, 그는 이미 아빠가 된 듯했다. 나 역시 기뻤다. 얼떨떨한 마음이 더 크긴 했지만, 나도 분명히 기뻤다.
나의 감정이 삽시간 불안으로 뒤덮인 건 다음 날 산부인과에서 아기집을 확인하고 나서부터였다. 의사의 임신 판정이 나의 현실감각을 일깨운 것이었을까, 호르몬의 장난이 시작됐던 걸까,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난 하루새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제일 먼저 육지에서 홀로 임신생활을 견뎌낼 자신감이 떨어졌다. 이 또한 인생의 무용담이 될 수 있는 챌린지로 여기자,라고 수백 번 마음을 먹었었는데 갑작스레 내 처지가 전쟁통에 남편을 잃은 미망인과 다를 바 없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임신과 출산으로 승진시기를 놓치면 어떡하지 지레 억울했고, 임신초기 메스꺼움과 노곤함은 날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연이을 삶의 큰 변화들로 나를 잃어버릴까 두려웠다.
나의 부정적인 마음을 잠재운 건 남편과 엄마였다.
남편은 나의 끝도 없고 논리도 없는 부정적인 생각과 상상들을 보태는 말 없이 그대로 들어주었다. 그리고 실질적인 대안들을 제안하고, 우리가 서로 공감했던 가족의 가치를 환기시키고, 결국 함께 행복할 거라 단언해 주었다. 그만의 다정함과 단단함은 나에게 큰 안정감을 주었다.
어머니는 본인의 행보로서, 너 역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다 용기를 주었다. 10평짜리 서울원룸에서 부모 도움 없이 아이를 키워야 할 수도 있는 여건의 우리들에게, 나 역시 너희를 그렇게 키웠고, 청소공간도 넓지 않아 오히려 좋을 거다 엄마 특유의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호쾌히 말씀하셨다.
두 사람의 다독임과 격려 속에 난 나답게 이 시기를 겪어낼 용기를 얻었다, 나는 남들의 걱정 어린 눈에도 무릅쓰고 견학 간 기관의 사격훈련에도 참여했고, 아카펠라 동호회 프로젝트 공연 무대도 섰다. 임신 중기에 들어서는 러닝을 다시 시작하고, 투두리스트였던 수영도 처음 시작했다. 열심히 일상들을 다시 꾸려가는 와중에 이직의 기회, 승진 등의 뜻밖의 이벤트들도 찾아와 주었다.
철없게도, 난 내 숨통이 좀 트이고 나서야.. 그제야 뱃속의 아가에게 '수박'이라는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다.
이따금 나의 욕심으로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고맙게도 16주 차의 수박이는 여전히 잘 자라고 있었다. 조금 이상한 말일 수 있지만 저는 저대로 잘 자라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우린 멋진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직 태아인 아이에게 적당한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여가는 기분이다.
수박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